키 작은 잡초에 묻힌 서귀포시 예래동 6만8000여평은 허허벌판이다.
지대가 높고 길이 좁아 농사도 짓기 힘든 척박한 땅이다. 그렇지만 마을
주민들은 요즘 이곳에 휴양형 주거단지가 들어선다는 소식으로 꿈에
부풀어 있다. 주민 김귀섭(56)씨는 "땅값도 많이 올랐고 개발 붐도 일고
있다"며 "단지가 들어서면 나도 식당을 해볼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예래동뿐만이 아니다. 제주공항 자유무역지대가 조성되는 제주시
용담2동, 첨단과학기술단지가 들어서는 제주시 아라동, 관광 미항으로
개발되는 서귀포시 송산동 일대에서 만난 주민들은 모두 벅찬 기대에
들떠 있었다.
5월 들어 20% 이상 늘어난 관광객 수도 제주도민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여파로 관광객들이 제주도로
발길을 돌린 데다가 도로 정비, 펜션 등 저렴한 숙박시설이 많이 생겨
관광객 흡인력이 커진 것이다.
제주도는 특히 지난해 4월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이 발효된 이후 1년이
넘도록 아무 성과가 없었던 외자(外資) 유치도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며
반색을 하고 있다. 미국의 종합 레저업체인 SCI가 25억달러 이상의
투자를 본격 검토하는 등 지금까지 총 16개 업체가 사업 계획을 세웠거나
투자 의향을 밝혔다.
◆ 제주도민 “국제자유도시 개발은 도민 이익 우선해야”
제주도민들은 이 같은 성과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현재 진행되는
개발방식이 제주도민보다는 '육지'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며 조심스레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개발 과정에서 도민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고, 면세점·쇼핑 아웃렛 설치 과정 등에서 기존에 있던 지역
상권과의 마찰이 생기고 있다는 것. 또 현재 추진 중인 사업이나 계획이
모두 대형 프로젝트뿐이어서 자본력이 떨어지는 도민의 참여 가능성은
떨어진다는 우려이다.
제주발전연구원이 최근 20세 이상 도민 1500명을 대상으로
제주국제자유도시 추진이 잘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다'는 의견은 21%에 그친 반면, '순조롭지 못하다'는 응답은
47.9%나 됐다. 특히 개발 주체가 제주도가 아닌 건교부 산하의
개발센터라는 점도 불만이다. 설문 대상자 중 68.2%가 '개발센터의
권한과 업무를 제주도로 이관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행대로 개발센터의
업무·권한을 유지해야 한다는 답변은 7.6%에 불과했다.
반면 개발센터 쪽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김철희
경영기획실장은 "국제자유도시가 성공하느냐, 못하느냐의 관건은
전적으로 투자 유치 성공에 달려 있다"며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인
개발센터를 제주도로 불러들이는 것보다 센터와 도가 서로 협력해 해외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쪽은 제주공항 내 설치된 내국인 면세점의 운영 방향에 대해서도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우근민 지사는 최근 "면세점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토산품 등을 팔던 기존 지역 상권과 감귤 농사로 손해보는 농가
등의 소득 보존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개발센터는 "돈을
버는 대로 쓸 게 아니라 국제자유도시 개발의 종자돈으로 삼아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 걸음마 단계 ‘7대 선도 프로젝트’
국제자유도시의 추진 엔진은 테마형 복합 쇼핑 아웃렛 건설 서귀포
관광 미항 개발 생태·신화·역사공원 조성 휴양형 주거단지 개발
첨단과학기술단지 조성 중문관광단지 확충 제주국제공항 자유무역지대
조성 등 7대 선도 프로젝트이다. 김형수 제주국제자유도시 추진단장은
"최종 목표는 제주를 사람·상품·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개발이 끝나는 오는 2011년에는 관광객 1000만명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2011년까지는 겨우
7년여가 남아 개발 속도가 느리다는 평도 나온다. 이제 겨우 입지조건과
타당성 등에 대한 용역이 끝나가 실제 개발은 2004년 말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추진단의 한 관계자는 "나도 제주도 사람으로 제주도를 위한 정책을
세우고 있지만, 폐쇄적인 섬문화 때문에 힘들 때가 많다"며 "누가
주도권을 갖느냐 보다 어떻게 제주도를 업그레이드시킬 것인가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켜야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