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 요코
(클라우스 휘브너 지음/장혜경 옮김/솔/1만8000원)
비틀스와 관련된 오래된 농담 한 토막. 새로 사귄 여자와 결혼을 결심한
존 레넌이 다른 비틀스 멤버들에게 그녀를 소개하기로 했다. "내
약혼녀야." 존이 소개한 일곱 살 연상의 작달막한 동양 여인을 본 순간
폴과 조지와 링고는 경악한 나머지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오!
노(No)~" 그러자 그녀는 의외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제 성(姓)을
이미 알고 계시는군요!"
오노 요코(小野洋子·70). 음악·미술·문학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반전운동과 페미니즘에 일생을 바쳤던 전위예술가. 존 레넌의 아내이기도
했던 그녀는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틀스를 해체시킨
주범이자 요부(妖婦)로 인식돼 왔다. 다음달 19일 그녀의 방한에 앞서
출간된 이 전기는 그녀를 '마녀'에서 '진보적 예술가'로 다시
자리매김시키고 있다.
쇼와(昭和) 초기인 1933년, 외할아버지가 은행업의 대부(代父)인 도쿄의
부유한 명망가에서 태어난 오노는 미국에서 음악 공부를 하며 순탄하게
성장했다. 그러나 자유로운 새처럼 비상을 꿈꾸던 그녀의 예술세계를
담기에 일본의 가부장적 문화는 철창과도 같았다. 첫 남편과 딸을 버리고
전위예술계로 투신한 뒤, 존 케이지, 마르셀 뒤샹, 백남준 등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예술그룹 '플럭서스'의 일원으로 활발한 작품과
퍼포먼스 활동을 벌이게 된다.
1967년,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선 '엄청난' 이벤트가 벌어졌다. 넬슨
제독이 프랑스 함대를 물리친 '위대한 전승 기념비'인 웅장한
사자상을, 볼품없는 한 일본 여자, 오노가 흰 천으로 모두 덮어버린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어리석은 전쟁을 벌이고
기념하는 남성들의 세계에 대한 조롱이었고, 이는 영국 국민들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다. '미친 여자, 전 세계인이 가장 혐오하는
여자'라는 욕설을 안고 살아야 했다.
남성주의를 향한 선전포고와도 같았던 1967년의 영화 '궁둥이', 1968년
선보인 '도토리 퍼포먼스', 1969년 레넌과 함께 침대 위에서 벌인
평화시위 '베드 피스', 1970년 발표한 노래 '여성은 세상의
깜둥이다'…. 장르를 넘나들고 도발적이면서도 안주를 거부하던 그녀의
예술 족적을, 이 책은 당대의 예술 사조와 예술가들에 대한 설명과 함께
꼼꼼히 짚어간다.
이제야 사람들은 그녀가 얼마나 진보적인 예술가였는지를 깨닫게 됐다고
이 책은 말한다. 재즈 아티스트 오네트 콜먼은 "그녀의 음악에는 현대
모든 민족문화의 사운드가 들어있다. 그녀는 진정 세계적인
아티스트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의문 두 가지. 만일
그녀가 비틀스 멤버 중의 한 명과 결혼하지 않았어도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출간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아주 케케묵은 질문이지만,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비틀스는 단 몇 년이라도 더 존속할 수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