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구 정치부차장대우 ginko@chosun.com <a href=http://db.chosun.com/man/>[인물 DB]<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25일 서기국 보도를 통해 또 다시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 명시된 ‘추가적 조치’를 문제 삼아, “남쪽이 대결을 조장하면 남쪽에 엄청난 재난이 올 것”이라고 위협했다. 5차 남북 경협추진위원회 기간중인 지난 22일 북한이 같은 발언에 대해 “남북 모두 잘 되기를 기대하는 의미에서 한 말”이라고 해명한 지 불과 사흘만이다.

문제는 조평통 보도가 경협추진위에서 북측 대표가 맨 처음 한 발언의 수위 보다 더 세고, 자극적이란 점이다. 보도는 먼저 우리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추가적 조치’가 군사적 행동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라는 주장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설명한 데 대해 “양대가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파는 식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남한 당국을 이처럼 원색적으로 비난한 적은 없었다.

북한은 또 A4 용지 두 쪽짜리 ‘보도’에서 “남쪽에서 엄청난 재난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상상할 수 없는 재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등 ‘재난 위협’을 두 차례나 했다. 이는 만약 미국이 핵문제로 북쪽을 공격하면 남쪽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이며, 자신들이 미국의 공격을 받으면 남한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선전포고’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쯤 되면 경협추진위에서 북측 대표가 했다는 해명은 순전히 남쪽에서 식량를 얻기 위해 마지 못해 한 것이며, 오히려 25일의 조평통 보도가 북한의 ‘본심’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다. 이는 조평통이나 경협추진위원회 북측 대표들 모두 노동당 대남부서인 통일전선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결국 “남북대화에서 북한의 유감성 해명을 받아낸 것은 처음”이라는 우리 정부의 홍보가 효과를 채 보기도 전에 우리 정부는 뒤통수를 얻어 맞은 셈이다. 또 우리 정부는 북측의 ‘거짓 해명’에 속아 쌀 40만t을 덜컥 내주고 돌아왔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따라서 정부로선 북한에게 또 한번 강하게 해명을 요구해야만 마땅하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남쪽을 위협했고, 그것도 첫번째 위협 후, ‘해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위협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조평통 보도에 대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26일 조평통의 보도에 대해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미·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대해 강경한 조치를 언급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것으로 볼 수 있다”, “경협추진위에서 북측 대표가 했던 발언과 같은 것”라면서 “예민하게 반응을 보일 필요 없다”고 말했다. 조평통 보도 어디에도 미·일 정상회담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런데도 정부 당국자는 ‘미·일 정상회담에 대한 반발’이란 식으로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려는 이유에 대해 선뜻 납득이 가질 않는다.

이쯤 되면 새 정부가 외쳐온 ‘할 말은 하는 새로운 대화문화’를 정부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 경협추진위 회의를 이틀씩이나 공전(空轉)시키면서 북측에 ‘재난’ 발언에 대해 해명하라고 압박한 것은 서울의 여론을 의식한 ‘쇼’에 불과하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북한이 경협추진위에서 ‘해명’ 했을 때엔 다신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담겨있다는 점에서 조평통 보도는 이런 것쯤 어겨도 된다는 생각인 것같다. 달리 표현하면 한·미 정상회담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북한이 오히려 ‘할 말은 다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스스로 이를 덮어주려 한다면, 새 정부가 강조해온 ‘남북관계의 신뢰와 원칙’은 거의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김인구 정치부차장대우 gink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