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어느날, 서울 여의도에 있는 T연예기획사 사무실에서 한판
활극(活劇)이 벌어졌다. 당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소속 탤런트 S양을
둘러싼 분쟁. 그녀가 상의 없이 Y기획사로 소속을 옮기면서 비롯됐다.
이에 T사가 법적 대응을 하겠다며 펄펄 뛰자, Y사는 조직폭력배를 보내
T사 사무실을 습격한 것이다. 집기가 박살 나고 사무실이 난장판이 되는
일대 소동이 벌어진 후 S양 이적 분쟁은 물 밑으로 사라졌다.

연예기획사의 조폭 관련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연예인의 뒤를
봐주던 조폭들은 90년대부터 연예기획사란 간판을 달고 직접 연예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H연예기획사 P상무는 "밤무대가 생업의 수단인
연예인들과 조폭 사이에는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돼 있다"며 "일본만
해도 연예기획사의 90% 이상은 야쿠자가 연루돼 있는데 한국이 뭐
다르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막상 조사에 들어가면 관련자 모두
함구하기 때문에, 수사당국은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나 자백·진술이 없어
애를 먹는다.

얼마 전 기자는 '서방파', '이글스파' 등 조폭 검거에 참여했던
검찰의 김모 수사관을 만나, 주요 연예기획사 대표와 직원들 명단을 주고
아는 이름이 있는가 물었다. 김 수사관은 "A는 목포터미널 식구고, B는
대전 유성 부근을 주름잡는 애들, C는 과거 수노이파 조직원, D는 광주를
기반으로 성장한 신흥 조직, E는 대전 사거리파…"라며 줄줄이
손가락으로 짚어나갔다.

지난해 서울지검 강력부가 연예가 비리에 칼을 대겠다고 했을 때,
종착점은 조폭과의 검은 고리를 끊는 데 있었다. 검찰은 조폭 출신
인사가 연예기획사의 경영에 관여해 지분을 빼앗고 소속 연예인과 직원
등을 상습 폭행한 혐의를 잡고 이들을 출국금지하면서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가해자·피해자 모두 이를 부인해 소득 없이 끝나고 말았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박모 수사관은 "피해자들조차 후환이 두려운지 입을 꾹
다물고 진술을 거부해 아쉬움만 남기고 종결했다"고 말했다.

조폭들은 '해결사'와 '투자자'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연예계를
장악하고 있다. '해결사'는 소위 '깍두기'들을 대동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식이다. 지난해 결혼을 하고 활동을 접겠다고 선언한 가수 C씨.
바로 직후 소속사인 W연예기획사가 보낸 폭력배 서너 명이 찾아와 "살고
싶으면 똑바로 하라"고 협박했다. C씨는 봉변당한 사실을 아무 데도
발설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W기획사의 L실장은 "그 아이가
하도 뺀질거려서 약간 '조치'한 것일뿐"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조폭들이 연예가를 소리없이 장악하는 '투자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추세다. 2001년 조폭 관련 영화로 히트를 친 S프로덕션 S대표는
꾸준히 영화에 조폭 자금을 끌여들였다는 의혹을 받았다. 물론 본인은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A연예기획사 P대표는 "S씨가 이익금을
투자자(조폭)와 나누는데 인색해 문제가 터졌다는 말을 관련자에게 직접
들었다"며 "처음엔 5대5로 나누기로 했다가 저쪽(조폭)에서 7대3을
요구해 갈등이 빚어진 것으로 알고있다"고 말했다.

주연급 영화배우 박모씨 등을 영입해 연예기획사를 설립하려던 매니저
S씨. 그는 지난해 유명 영화제작사 J사로부터 "5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제의를 받고 이를 수락했다. 그러나 그 뒤 J사 돈이 조폭의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는 "J사에 자금의 출처를 물었으나 '알
필요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고 시간이 지날수록 '전주에 거점을 둔
조폭이 댔다'는 등 소문이 점점 사실로 구체화됐다"라며 "결국 받은
돈을 돌려주고 손을 털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조폭과 연예기획사의 커넥션을 밝히는 일은 쉽지 않다.
서울지검 강력부의 한 관계자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연예기획사와 조폭, 그 틈에서 '희생'을 무릅쓰고 '스타'가 되려는
연예지망생들 간에는 두꺼운 연막이 쳐 있어 사법적으로 입증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