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소
(권지예 소설/문학동네/8500원)
2002년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의 두번째 소설집. 독자를 곧장 이야기
속으로 끌고들어가는 스토리의 즐거운 긴장감, 추리소설같은 막판 반전이
주는 기분좋은 놀라움이 있다. 6개의 단편과 1개의 중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 '폭소'는 자폐아로 인해 엉망이 되어버린 가정을 비관하며
바다로 자살여행을 떠나는 남자의 슬픔과 그 극복의 이야기다.
아이때문에 힘겨워하는 아내를 위해 남자는 성실하게 잠자리에 임하지만,
아내는 언제부턴가 절정의 교성 대신 폭소를 터뜨린다. 남자를 비참하게
만드는 웃음의 끝에서 여자는 정신병에 걸려 가정을 떠난다. 남자는
주식투자로 돈까지 몽땅 날렸다. 폭소가 삶을 조롱하는 숨막힌 현실.
절망한 남자는 '델마와 루이스'처럼 아들과 함께 차를 타고 바다로
뛰어드는 행복한 순간을 꿈꾼다. 그러나 남자는 죽음의 의식을 치르기
전, 아들이 사고로 방파제 밑에 굴러 떨어지자 본능적으로 구해내는
얄궂은 경험을 한다. '삶은 의지가 아니라 본능'이다.
'스토커'는 이야기 전개가 기발하고 함축된 의미는 복잡하다. 서른
셋의 노처녀가 스토킹을 당한다. 말을 하지 않는 전화가 걸려오더니
마침내 집에 기르던 개가 없어진다. 스토커가 누군지 전혀 알 수 없다.
언니 집으로 피신하던 날, 지하철 안에서 치한이 그녀의 엉덩이를
만진다. 등 뒤에는 무표정한 남자 얼굴 세 개가 있지만 누가 '가면의
얼굴'인 지 가려내지 못한다. 치매에 걸린, 언니의 시아버지도 그녀에게
추근댄다. 노인은 얼굴을 드러냈지만 치매 속에 정신을 숨긴 스토커다.
여자는 집으로 돌아와 생명보험을 든다.
'풋고추'의 여주인공은 아버지의 사업실패를 비관, 몸을 망치고
사창가라도 갈 요량으로 남자친구를 유혹하는 명문대 학생이다. 꼬임을
당한 친구는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다 괜히 자신의 '고추'만 보여준다.
아버지는 매운 풋고추를 먹으며 호방하게 웃지만, 훗날 "세상살이
견디는 묘약으로 참고 먹었다"며 속으로 울었던 과거를 회상한다.
권지예의 소설 속에서 삶은 풋고추같다. 아프고 맵고 설익었다. 애잔한
삶의 이야기는 그러나 생의 명과 암, 어느 한 쪽도 성급히 두둔하지
않기에 절실한 느낌으로 읽힌다. 문학평론가 김미현은 이 소설을
"90년대 문학이 지나온 터널 끝에서 만나게 되는 눈부신 햇빛"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