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극적인
단일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둘 모두의 당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다른
후보의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까닭이다. 비록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던 유동층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당선 가능성 조사에서는 오히려 그 격차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노무현, 정몽준 두 후보의 지지층이나 정치이념이 도저히 섞일 수
없을 정도로 달라서 단일화의 가능성이 그만큼 낮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후보들 자신이 그것에 거부감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일화는 이루어졌다. 주변 사람들의 거센 요구에
따른, 오로지 당선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겼다. 선거라는 정치 게임에서 승리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후보가 당당한 승리자가 되었다. 그것이 고도의
정치 전략이었건 아니면 단순한 게임이었건 간에, 민주사회에서 선거를
통해 정당성을 획득한 우리 모두의 대통령인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를 대통령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대선 당시의 단일화가 정치적 술수였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국가의 비전이나 정치 이념의 조정이 없이 오직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유권자를 속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선거 전날 밤, 단일화
약속이 깨짐으로써 그들의 주장이 꼭 뒤틀린 심정의 표현만은 아님이
증명되었다. 역사에 우연이란 없지만, 만일 선거가 하루 늦추어
치러졌더라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당선 이후에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이 보인 모습이다.

자신들의 지지세력에는 도덕성과 개혁이라는 월계관을, 반면에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기득권에 집착하는 탐욕과 반(反)개혁의 꼬리표를
붙이길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을 동지와 적으로 가름으로써
스스로 지지자들만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러니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로서는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해야 할 사람은 집권세력 자신이다. 단일화 이전에
그들은 불과 25% 가량의 지지만을 얻고 있었다. 그 소수의 핵심 지지
세력만으로는 어차피 선거에서 이기는 일이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 이념이 다른 세력과도
대화를 통해 과감하게 단일화를 이뤄낸 타협과 조화의 정신을 국민이
높이 사준 덕이다. 그러니 이 정권은 반대자들까지를 포용해야 하는
태생적 의무를 갖고 있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지난
대선에서 단일화 뒤에 그들을 지지하고 나선 나머지 25%의 국민에 대한
배신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선택해야 한다. 동지의식으로 똘똘
뭉친 소수 세력만의 대변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상생(相生)과 대타협의
정신으로 국민 다수의 대통령이 될 것인가?

다행스러운 점은 이라크 전쟁에 국군을 파병하는 결정이나, 이번 미국
방문에서 한·미 관계를 조율해 나감에 있어 대통령이 핵심 지지 세력의
요구대로만 움직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몇 가지 사례를 두고
그가 반대세력의 목소리까지도 귀에 담아 들으려 한다는 성급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국가의 명운과 이익이 걸린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현명하고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에 갈채를
보내야 한다. 그래서 이제야말로 새 정권의 성격에 대한 논란을 접고,
그들의 개혁의 목소리에 담긴 진의를 지켜보아야 할 때다. 지난 선거에서
나는 그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박철화·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