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9월 30일은 영화팬들에게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날이다. 하지만
그런 기억일수록 징글맞게 되살아나곤 한다. 세상은 그날 미국 46번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한 배우를 잃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세상을 다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제임스 딘(1931~1955)은 겨우 스물네 살이었다. 자동차와 함께 그의
생물학적 삶도 멈춰버렸다. 그의 이름이 남아 있는 영화는 '에덴의
동쪽' '이유 없는 반항' '자이언트' 3편뿐이다.
그러나 굳이 영화를 찾아보거나 기억을 헤집지 않아도 제임스 딘은 종종
우리 곁을 스쳐간다. 일본에서는 그의 모습을 담은 퍼즐이나 고급
쇼핑백을 흔히 볼 수 있다. 프랑스 상점에도 제임스 딘 필통과
돼지저금통이 눈에 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몇해가 지나도록 수만
통의 편지가 그에게 날아왔고, 한 광고회사는 1980년대에 그를 빼닯은
모델들을 뽑아 시리즈 광고를 제작하기도 했다. 제임스 딘은 아직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박혀 있다.
불멸(不滅)이란 그를 두고 하는 말처럼 들린다. 프로이트는 불멸을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사람들에게서도 사랑받는 것'이라 정의했다.
그런데 제임스 딘은 상상만 하면 누구로든 바뀔 수 있는 모습을 스크린
안팎에서 보여주었고, 덕분에 어떤 얼굴에서 그의 그림자를 건지는 건
쉬운 일이 돼버렸다. 가령 초창기의 비틀즈는 '5명의 제임스
딘'이었다.
뭔가에 짓눌린 채 환상에 젖은 섹시한 반항아. '10대(代)'로
뭉뚱그려지는 그의 특징이다. 엘리아 카잔의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사실주의 연기를 배운 제임스 딘은 영화 속에서 실제 삶보다 더 리얼한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10대적 정체성은 그의 죽음과 함께 얼어붙어
사람들에게 곧잘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드니 디드로는 '배우에 관한 역설'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배우에게 감수성은 장애물이다. 타고난 천성에 좌우되는
배우는 여러 배역을 다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배우라면 모름지기
감수성이 무뎌야 한다는 훈수다. 제임스 딘은 감수성을 억누르고 자신을
배역에 포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저자 데이비드 달튼은 제임스 딘과 같은 공기를 마셨던 주변인물들을
만나며 글을 썼다. 제임스 딘이 고등학교 때 자주 싸움을 벌이는
열등생이었다는 점,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LA) 시절 연극
'멕베스'에서 말콤 역을 맡은 그가 혹평을 받았던 일, 책 여백에
애인에게 보내는 시를 갈겨쓰곤 하던 일, 사진 찍기를 싫어했다는 사실
등 제임스 딘이라는 사람의 부피가 느껴지는 기억들이 글로 옮겨졌다.
책에 실린 80여장이 넘는 사진 덕에 제임스 딘의 변화와 삶의 부피까지
엿볼 수 있다.
(데이비드 달튼 지음/윤철희 옮김/미다스북스/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