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바그다드시 북쪽‘뉴 바그다드’지역의 한 시장에 나와 있는 사무용 및 대학 강의실용 중고 의자들. 시민들은 이런 의자들은 전에는 이 곳에서 볼 수 없던 것으로, 약탈당한 물건이라고 말한다.


15일 오전 바그다드 시내 중심 사둔 가(街)의 한 주유소. 이라크인들이
'벤젠'이라고 부르는 휘발유를 넣으려는 차량들이 2㎞가 넘게 도로를
2중, 3중으로 점거하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맞은편 길가에선 아이들이
20ℓ들이 양철통으로 휘발유를 팔고 있다. 주유소의 ℓ당 휘발유 가격은
50디나르(미화 2~3센트)지만, 길거리의 양철통 휘발유는 5배인 ℓ당
250디나르.

시민들은 "주유소들이 휘발유를 빼돌려 비싼 값에 아이들에게 넘겨
연료난을 부채질한다"고 흥분한다. 공권력이 실종된 지금 이라크에선
전엔 상상도 못했던 이런 '암(暗)시장'이 성업 중이다.

팔레스타인 호텔 주변 피루도스 광장 주변엔 매일 무허가 환전상
10여명이 둘러앉아 미 달러화를 이라크 화폐 디나르로 바꿔 준다.
디나르화(貨) 가치는 지난 2일 달러당 1950디나르에서 15일엔
1500디나르까지 올랐다. 공식 외환거래 시장도 없고, 은행 업무도 마비된
패전국 이라크의 화폐가치가 치솟는 데 대해 환전상인 알리아
후세인(Hussein·29)은 "미(美) 군정당국이 이라크인 직원들에게 일당
20달러를 줘 시중에 달러가 많이 풀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무허가 환전상이 많아지자 후세인 정부 시절 공식 허가 환전상이었던
인근의 먼덜 알 아니(Aani·60)는 아예 가게를 위성TV 수신 안테나
판매점으로 바꿨다.

바그다드 암시장의 압권은 재래시장이다. 시 북쪽 바그다드
쥐디다·머쉬텔·발라디아트 지역 시장들은 말 그대로 '도둑 시장'
'장물(贓物) 시장'으로 변했다. 인근 쇼핑센터에서 약탈한 셔츠와 각종
생활용품, 주차 차량에서 빼 온 타이어와 휠 캡 등이 버젓이 팔린다.
15일 셀루안(26)이란 청년은 중국제 셔츠를 들고 "훔친 것이니 5달러에
팔 수 있다"고 말했다. 전엔 볼 수 없었던 대형 야외 램프와 중고
강의실 의자들도 각각 5만디나르(약 25달러) 가격에 시장에 나왔다.
머쉬텔 시장에선 한 꼬마가 칼라슈니코프 AK-47 자동소총의 실탄과
탄창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치안 불안에 따른 호신용 외에도 각 정파마다 민병대를 가동하면서
군·경찰 무기고에서 약탈된 총기류는 갈수록 불티나게 팔린다고
이라크인들은 말한다. 그래서 휴대가 간편한 구경 9~13㎜인 골드스타,
브라우닝, 타리크 권총은 400달러, AK-47 자동소총은 100달러로 전쟁
직후보다 2배 가량 뛰었다. 하지만 최근 미군의 단속으로 인해 총기류를
내놓고 파는 이는 볼 수 없었다.

15일 오전, 운전 기사는 "우리 동네 자파르니야에선 아직도 공공연히
팔린다"고 알려 왔다. 그러나 통역인 알리 쇼키르(Shokir)는 이곳
취재를 말렸다. 이틀 전 바그다드 쥐디다 시장에서 겪은 봉변 탓이었다.
그와 함께 장물을 취재하던 기자에게 디시다쉐(남성 전신을 덮는 옷)를
입은 한 남자가 나타나 "사진을 찍어 우릴 곤란하게 한다"며 "경찰도
없는데 혼내주자"고 주변 사람들을 선동했던 것. 황급히 피해 지나가던
차를 세워 탄 알리의 입에선 "함두릴라(신이여, 감사합니다)"가 끊이지
않았다.

알리는 그날 저녁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너무 슬프오. 당신은
'이라크는 엉망'이라고 얘기하겠지만, 이라크는 정말 이런 나라가
아니었소. 우린 다시 시작할 것이고, 10년 뒤 다시 마주 앉아 웃으면서
지금을 생각할 때가 있을 것이오." 48세인 이 사내의 눈가엔 눈물이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