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설교시간때 안종만(安鍾萬·68)목사는 이런 말을 했다.
“나의 모든 결점과 실패와 죄악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장점만 보며 격려해 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밤잠을 못 이루곤 합니다.”
안목사가 담임하는 대흥침례교회는 이날부터 2주간 교회창립 55주년 및 담임목사 취임 4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시작했다. 대흥교회에서만 40년을 맞은 그는 곰곰히 회상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 같다. 충청하나은행 본점 뒤에 있는 대흥교회는 그가 시무하는 동안 재적인원 약8000명으로, 대전에서 첫 손가락에 꼽는 교회의 하나로 성장했다.
“경북 예천에서 목회하고 있을 때 교인들이 저를 초빙했습니다. 해가 질 무렵 부임예배를 드리려고 목척교 위를 걸어가는데 마음속에서 누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대전 도성(都城)의 복음화를 위해 너를 불렀다’는 확신이 왔습니다.”
안목사는 그때의 그 확신이 바탕이 돼 침신대 총장으로 오라는 제의도, 부산이나 서울의 큰 교회로 오라는 권유도 모두 마다하고 오로지 한 교회를 섬겨왔다.
대전고를 나온 그는 의대에 가려 했으나 의사공부 뒷바라지 할 수 없다는 부친의 반대에 크게 실망했다. 그렇지만 ‘신학교 가면 외국유학갈 수 있다더라’는 친구의 말을 들은 부친이 신학교를 권함에 따라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대전침례신학대학교에 입학했다. 환경에 의해 입학했지만, 공부를 하면서 그 길이 자신의 길임을 확신해 “공부하는 6년동안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초등학교때 친구 따라 교회갔다가 고교때 세례받은 안목사는 교육과 성경에 기본을 둔 설교로 교인들을 착실하게 양육한 것이 특징. 이에 따라 그는 새신자들을 위한 7주간의 교육을 비롯해 전도교육등 당시로서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대흥교회는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에 일찍부터 힘을 쏟았으며, 영어예배, 노인대학 등도 운영한다.
안목사는 “우리 교회는 급성장한 것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때 한국교회에는 오순절적인 은사중심의 교세 확장이 인기를 끌었지만 “처음부터 교육으로 신앙의 기초부터 다지겠다는 원칙을 지킨 것이 교회성장하게 된 비결”이라고 말했다. 은사에 대해서는 “부인도 강조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교회가 내세운 7가지 사역은 성경에서 말하는 7가지 은사를 따라 정한 것이다.
침신대 1회 졸업생이다 보니 어려울 때 터놓고 상의할 선배가 없었던 것이 가장 힘들었다. 그러면서 안목사는 “목회에서 가장 힘든 것은 인간관계”라고 되뇌였다.
대전 교계에서는 안목사의 후계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적지 않다. 비교적 교회역사가 짧은 대전에서는 그의 선택이 중요한 선례로 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안목사는 “교회에서 인선위원회나 초청위원회를 구성해서 선택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때와 분위기가 되어지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올 것”이며 “선택은 그들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가 오래동안 교회를 다져오면서 이룩해 놓은 성과와 업적을 볼 때 스스로 나서서 그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후계자의 조건으로 교회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전임 목회자의 철학을 충분히 이해하고, 대전에 침례교단 신학교가 있는 만큼 신학생들이 보며 배우는 침례교회의 모델 교회로 남아있기를 바란다는 점을 덧붙였다.
그는 마지막 과제로 교육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일반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도록 교육관이라는 이름 대신, 생명을 가져다 주며 생활에 활력을 넣는 ‘라이프 센터’라는 이름으로 10~15층 건물을 올해 기공하겠다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