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관장

침실 깊숙한 곳에 감춰져 있던 각국 성(性)문화의 은밀한 소품들이 금기(禁忌)의 울타리를 넘어 광장으로 나온다. 한국 최초의 성(性) 풍속 전시장인 ‘아시아 에로스박물관’(관장 김영수·金泳洙)이 오는 24일 서울 삼청동에서 문을 열고 일반공개를 시작한다.

12일 미리 가본 에로스박물관은 삼청동길의 초입, 경복궁 민속박물관 맞은편 큰 길가에 하얀 3층건물로 자리잡고 있었다. 입구에 버티고 있는 거대한 남근(男根)형상 기둥만 아니라면, 영락없는 카페 같다. 150평의 전시장엔 성풍속의 단면을 생생히 보여주는 아시아 각국의 춘화(春畵), 남녀 모조 성기, 성행위 조각상, 성희(性 ) 묘사 노리개 등 현대 이전 물건 300여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석기시대 숭배의 대상이었다는 남근석(男根石)으로부터, 조선시대때 엽전 모양 놋쇠에 각종 성행위 체위를 새겨 시집가는 딸에게 어머니가 건넸다는 별전(別錢)까지, 성애(性愛)를 매우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묘사한 진귀한 물건들이 수두룩하다.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 네팔 티벳 인도 등 아시아 각국에서 모은 것들이다.

전시장 입구에서 만나는 1m높이의 충청도산 천연 남근석(男根石)정도는 점잖은 편. 전시품중 100여점이 넘는 각국 ‘춘화’(春畵)들속에서 벌거벗은채 뒤엉켜 있는 남녀의 노골적 성행위 묘사는 현대의 포르노 못지 않다. 성(性)과 육체적 쾌락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이 시대와 나라를 가리지 않고 얼마나 강렬하게 지속되어 왔는지를 피부로 느끼게 한다.

아시아 에로스 박물관 전시작품/ 조인원 기자 <a href=mailto:join1@chosun.com>join1@chosun.com<

그러나 이 박물관은 아시아 각국의 풍속사에서 성(性)이란 단지 쾌락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도 보여준다. 좀더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사고로 성을 바라보았던 옛 사람들의 세계관이 스며있는 물건들이 눈길을 끈다.

지체높은 이들이 흔히 베개속에 몰래 보관했던 춘화 역시 현대의 포르노 사진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고 이 박물관 심광웅 홍보부장은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일본에서 춘화는 악령을 쫓는 주술적 힘이 있다고 믿어 액땜용으로 몸에 지녔다. 증명 사진만하게 만들어진 19세기 중국의 미니 춘화들도 호신용으로 씌었다. 조선시대때 춘화는 출가를 앞둔 여성의 성교육용이기도 했다.

전시된 춘화중 일본 유곽의 여성들이 자신의 요염한 모습을 담아 일종의 선전용으로 뿌리던 춘화 초상화나 가부키 극단이 유명배우의 벗은 모습을 그려 넣어 에로 영화 포스터처럼 그린 광고지도 특히 눈길을 끈다.

너무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를 하고 있는 티벳 밀교(密敎)의 18세기 금동 합환상(合歡像)은 ‘성이란 남자의 지혜와 여신의 자비가 합쳐져 완벽한 우주가 되는 과정’이라 이해한 티벳 밀교의 가르침을 그대로 보여준다.

동양의 과거역사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성적으로 억압되어있는가도 생생히 드러난다. 전시품중 여성들 발을 꽁꽁 묶었던 중국의 전족(纏足)에 쓰인 10여㎝의 신발엔 이 풍습이 여성의 발을 어린애처럼 부드럽게 유지시킴으로써 남성의 변태적 성희(性戱)를 위한 도구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명이 붙는다. 이 전족 신발 자체가 남성들의 성적 흥분을 자극시키는 도구, 즉 페티시즘을 위해 사용되었다는 설도 있다. 중국 명-청조 때 왕실에서 내시를 만들기 위해 거세할때 쓰던 칼 같은 끔찍한 도구도 전시장을 지키고 있다.

동양 3국 춘화의 서로다른 스타일도 각 민족의 성적 상상력을 비교하게 해준다. 일본은 성기를 실제보다 크게 그리는 등 과장된 표현을 즐겨하고 있고, 중국은 성행위 체위의 다양한 변화에 관심을 쏟고 있으며 한국은 남녀가 성행위하는 공간의 책상이나 화병등 소품 등을 통한 분위기 연출에 신경쓴다고 이 박물관의 관계자는 말했다.

이런 성 박물관은 외국의 경우 뉴욕의 ‘‘Museum of Sex’, 일본 규슈의 온천지 벳푸(別府)의 성박물관, 바르셀로나Museum of Erotica 를 비롯해 중국 상하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등 웬만한 도시에는 1곳이상 마련돼 있다. 이중엔 네덜란드의 섹스 뮤지엄이나 벳푸의 성박물관등은 성인을 위한 포르노 전시장 같은 오락적 측면이 강한 것들이 많지만 뉴욕의 섹스박물관처럼 성문화를 인류의 중요한 하위문화의 하나로서 조명하는 문화박물관의 성격을 지닌 것도 있다.

이 성관련 전시품들은 유물 콜렉션을 취미로 가꿔온 출판인 김영수 관장이 주변의 눈총을
무릅쓰고 20년간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모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김 관장은 한국은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성에 대하여 매우 폐쇄적인 전통을 지녀왔지만, 최근들어 인터넷은 물론 공중파까지 타고 포르노가 넘치면서 성행동은 개방돼 가고 있다 면서 그러나 아직도 성을 비속한 쾌락정도로 보는 시각이 많은 현실속에서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성문화를 인식하고 향유했는가를 제대로 돌아보자는 취지로 이 박물관을 만들었다 고 했다. 이 박물관은 오전 10시에 개관하며 박물관의 성격을 감안해 밤11시까지 늦도록 오픈한다. '18세이하는 부모를 동반해야 입장할수 있다. 입장료는 차 한잔을 포함해 1만원. 문의전화 (02)733-7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