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반테스 모범소설(1·2)
(세르반테스 지음/박철 등 옮김/오늘의 책/각권 1만원)
어떤 작품이 유명해지면 그 작품을 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죽어버린다. 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도 예외가 아니다. 주옥같은
명편을 여러 개 남겼지만 '돈 키호테'로 인해 모든 것이 잊혀졌다.
대가의 작품이 오직 하나만 좋기 어려운 것은 야구에서 투수 잘하는
선수가 타격도 잘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모범소설'은 세르반테스가 1613년 내놓은 12개의 중단편들을 묶은
것이다. 돈 키호테 못지 않은 작품들이면서도 돈 키호테에서는 볼 수
없는 세르반테스의 여러 작가적 특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문학사적으로는 돈 키호테와 함께 근대 소설의 효시로, 당시 소설계의
풍토였던 이탈리아식의 이상주의적이고 목가적 분위기의 소설쓰기를
벗어나 사실주의로의 전환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12편 작품 가운데 9편이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했다. 이 가운데 '집시
여인'은 집시 여인과 귀족 청년 사이에 벌어지는 신데렐라 성공담 같은
이야기로, 무수한 난관을 뚫고 결혼하는 과정 속에 스페인 집시들의
풍습과 생활을 자세히 기록한 것이 눈길을 끈다. 여타 작품들도 여자를
성의 대상이나 애 낳는 도구로 여기던 당시 세태를 거부하고, 결혼을
자유의지의 결합으로 파악한 중세 지성인의 진취적이고도 열린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