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가 시들하던 시트콤계에 새 강자가 나타났다. 다름아닌 MBC TV
'인어아가씨'다. 거의 1년째 매우 높은 시청률을 올리고 있는
'인어아가씨'는 복수치정극으로 시작했지만, 낡은 아파트가 리모델링을
하듯 '엽기극'을 거쳐 마침내 '시트콤'으로 변신을 거듭하며 시청률
지키기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우선 복수치정극에서 공포엽기극으로 변하는 과정은 주인공 아리영의
몫이었다. "너 몸 속에 피가 있는 애니?"하며 극단적인 언어를 써서
구박하는 시어머니에게 아리영은 "저는 어머니가 미워 죽겠어요. 미워
죽겠다구요"라며 막상막하의 대결을 벌인다. 이어 기선을 제압한
아리영은 시어머니 길들이기에 나섰다. 놀고 쓰기만 하는 상류층
여성으로 시어머니를 몰아세우며 "어머니 지금이 6·25 사변 때라고
생각하세요?"라며, 전쟁을 겪지도 않은 아리영이 시어머니를 훈계한다.
한술 더 떠 아리영은 시할머니 왕따작전을 진두지휘한다.

같은 인물의 캐릭터가 한 드라마에서 이렇게 돌변하는 것도 쉽지 않다.
분노와 눈물과 당당함의 아리영에서 버릇없고 고약한 '불여우 며느리'
아리영을 무리없이 소화한 장서희의 연기력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요즘 인어아가씨는 완전히 '시트콤'으로 돌았다. 아무리 반대하는
결혼이라고 해도 아들 마마준의 신혼여행까지 쫓아가 첫날밤을 훼방놓은
상황은 한국 TV의 시트콤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대개의
시트콤이 그러하듯 '직업의 세계' 역시 왜곡된다. 그래도 명색이
신문기자인 주왕은 세상에서 가장 한가한 '화려한 백수'이다.
시집살이하는 아내 아리영 앞에서 스트립쇼를 비롯해 온갖 기쁨조
역할에만 골몰할 뿐이다.

가방만 가끔 들고 왔다갔다 할 뿐인 마마준의 직업이 '공인회계사'라는
것을 아는 시청자는 과연 몇 명이 될까? 재능있는 작가로 부상한
마마린은 침대위에서 뒹굴뒹굴하고, PD와 데이트하기 위해 새벽조깅에
나서는 게 일이다.

어쩌다 보든, 습관처럼 보든, 혹은 중독되어 이 인어아가씨를 보든 간에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바라는 것이 있다. "인어아가씨 좀 얼른
끝났으면" 하는 것이다. 오로지 시청률이 높다는 이유로 '복수극'에서
끝났어야 될 인어아가씨가 디지몬이 진화하듯 온갖 변신 끝에 시트콤으로
거듭났다. 시청자로서 이보다 더 지겨울 수는 없다. 드라마로서도 이보다
더 너절해질 수도 없다.

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MBC 제작진과 드라마 작가에게 있다.
'명성황후'가 연장을 하게 되자 주인공 이미연은 "100m 달리기에
나왔다 마라톤을 뛸수는 없다"며 출연을 거부했다. 이미연은 마라톤도
뛸 수 있었다. 그러나 뛰지 않았다. 작가 임성한은 짐작컨대
하프마라톤조차 뛸 능력이 없음에도 마라톤을 뛰고 있다. 그 결과가
'시트콤 인어아가씨'이다.

모든 것이 넘치는 초변화 초경쟁의 디지털시대, 최고 미덕은 '적당할
때, 아쉬운 순간'에 사라지는 것이다. 디지털 TV시대를 맞아 TV는
끝내야 될 때 끝내는 기본상식부터 갖춰야 한다.

(전여옥·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