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는 관객에게 보이지 않게 하고 싶은 것을 검정색으로 한다. 무대
옆 대기공간과 무대 위 기술공간을 가리는 다리막과 머리막을 검정
벨벳으로 만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등-퇴장 계단의
디딤판 테두리에 흰색 테이프를 붙이고 암전 중 배우의 움직임을 돕기
위해 부딪힐 만한 물체에 발광테이프를 붙이거나 야광 낚시찌, 혹은 소형
점멸등을 붙이기도 한다. 현실에선 어떨까?

서울의 버스를 타 보면 손잡이로 쓰거나 몸을 의지할 수 있도록 곳곳에
봉과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다. 검정색인 경우가 많다. 런던 버스는
달랐다. 연두색이나 형광색 등 눈에 띄는 색깔로 되어 있어 급정거하는
찰나에 반사적으로 손이 간다. 도쿄의 버스도 마찬가지다.
한강시민공원의 나무들을 붙들어 세우는 쇠밧줄에 형광색 칠이 되어 있는
것도 공과 연을 좇아다니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초가지붕을 대체한 개량지붕에 주황색과 청색을 칠하던
시절이 있었다. 시커먼 초가지붕과 대조를 이루는 산뜻한 새마을의
이미지는 시대의 요청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한강 다리를 그런 플라스틱
바가지 색깔로 칠해야 할까. 등산용 텐트는 조난 시 눈에 띄기 위해
화려한 색으로 만들어지지만 수려한 계곡마다 휴가철 자릿세를 받기 위해
치는 천막들까지 개량지붕 색깔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자연의 세계에는 자신을 숨겨서 안전을 확보하는 동식물이 있는가 하면
과장되게 드러내어 자신을 보호하는 종자도 있다. 요즘 인간 세상에는
은은한 송이버섯보다 화려한 독버섯이 무성하다.

(박동우·무대미술가·중앙대 연극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