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스탠더드(Weekly Standard)표지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이라크전을 약 3주만에 승리로 이끈 미국의 힘에 대한 놀라움도 놀라움이지만, 세계를 압도하고도 남는 그 힘을 미국식 정의와 가치관에 따라 쓰겠다는 거침없는 태도가 눈길을 끌기 때문이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안팎에서 이같은 흐름을 주도하는 세력이 바로 신보수주의 계열의 인물들이다. ‘네오콘(Neocon)’이라는 약칭으로도 불려지곤 하는 신보수주의자들은 위로는 딕 체니 부통령부터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副)장관, 더글러스 페이스 국방차관, 리처드 펄 전 국방정책위원장, 존 볼튼 국무부 차관, 루이스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에 이르기까지 외교·안보 분야의 주요 정책결정자들이 대부분 망라돼 있다.

네오콘의 인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신념을 전파하기 위해 1997년에 만들어진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라는 싱크탱크의 창립 멤버에는 부시 대통령의 동생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와 댄 퀘일 전부통령, 제임스 울시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이 포함돼 있다.
학계와 언론계 쪽도 만만치 않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와 엘리어트 코헨 존스 홉킨스대 교수, 도널드 케이건 예일대 교수와 '미국 vs 유럽'의 저자로 알려진 그의 아들 로버트 케이건 카네기재단 연구원, '주간 스탠더드' 잡지 발행인 윌리엄 크리스톨 등이 대표적인 이론가들이다.

물론 이들 중에는 ‘신보수주의’라는 분류나 명칭 자체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인물도 있고,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경우에는 신보수주의로 묶기에는 그 틀이 워낙 독특하고 복잡한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그룹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은, 우리식 표현대로 하면 그들끼리 ‘코드’가 맞는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리고 이미 이들을 통칭해서 부르는 ‘네오콘’이라는 명칭은 이제 세계적 유행어가 된 상태다.

다만 부시 대통령은 그 주변이 네오콘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본인 스스로가 거기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령, 이라크 전쟁이나 작년에 발표한 안보분야의 ‘부시 독트린’ 등에서 보인 태도는 신보수주의자들과 궤를 같이하지만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외교적 해결을 추구하며 3자회담을 승인한 대목에서는 전통적 실용주의자로 분류되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의견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는 현재 공화당내 신·구 보수주의 흐름에서 중간자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집권당인 공화당 안에서는 신·구 보수주의 논쟁이 한창이다. 전통적·실용적 현실주의자(realist)들과 네오콘들이 격돌하는 것이다. 이미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들인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과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안보보좌관 등이 체니 부통령과 울포위츠 국방 부(副)장관으로 대표되는 네오콘들과 공개적으로 충돌한 바 있고, 최근에는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파월 국무장관이 대외정책의 주도권을 놓고 한바탕 전투를 치르고 있다. 오죽하면 부시대통령이 “제발 파월이 체니나 럼즈펠드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

미국 역사에서 볼 때 국무부와 국방부의 대립이 아주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에서 나타난 대립의 특징은 파월과 럼즈펠드라는 두 거물을 중심으로 한 이념적 충돌 양상이라는 점이다. 최근 파월과 럼즈펠드는 북한 핵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데 그 결과가 한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신보수주의의 후광을 업고 있는 럼즈펠드의 입장은 최근 뉴욕타임스 신문에 보도된 ‘국방부 비망록’을 통해 일부 확인됐다. 북한 핵문제는 협상으로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니 중국의 협력을 얻어 북한 김정일 정권을 축출하는 외교적 압력을 벌여야 한다는 게 비망록의 핵심이다. 이 비망록에 담긴 주장은 신보수주의적 사고와 궤를 같이한다.

전통적 현실주의자 내지는 국제문제를 보는 과거의 보수주의자들의 생각이 '세력 균형
(balance of power)'적 시각에 따라 국제관계를 해석하고 풀어가려고 한 반면, 신보수주의자들은 보다 적극적인 미국적 가치의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적어도 과거의 미국은 '세계의 여론' 내지는 '국제적 합의와 동의'라는 절차에 신경쓰는 듯한 시늉이라도 했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소프트파워(soft power)'라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이라크전(戰)에서 드러난 미국의 태도는, 마치 그간의 가식을 벗어던지기라도 하듯 노골적인 일방주의였다. 유엔도, 유럽도, 그리고 세계적인 반전(反戰) 시위까지…, 거추장스러운 것은 모두 무시하고 ‘마이 웨이’를 가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세계는 이제껏 알고 있던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를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9·11 테러 1주년에 맞춰 작년 9월에 발표된 '부시 독트린'이야말로 갈수록 세를 넓혀가는 신보수주의가 내부 논쟁에서 승리한 결과다. 부시독트린의 핵심은 '선제공격 (preemptive
strike)'이라는 개념이다. 이는 미국과 세계에 대한 위협이 현실로 닥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선제공격을 통해 그 싹을 자르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부시독트린은 미국 대외정책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다.

2차대전 후 반세기동안 미국이 펴온 정책은 '봉쇄와 억지 (containment and
deterrence)'였다. 한마디로 위협이 번지는 것을 막고 누르는 데 초점을 둔 것이었다. 부시 독트린이 처음 발표됐을 때만 해도 그 정확한 의미를 알기 어려웠던 세계는 이번 이라크 전쟁을 통해 '새로운 미국'을 현장 체험한 된 것이다.

신보수주의자들은 위협이 닥치기 전에 먼저 위협을 인지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미국이 위협으로 간주하고 판단하는 것이지, 국제여론이나 국제기구의 의사가 아니다. 유엔이나 세계여론이 지지해주면 고맙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미국이 행동에 나서는 것을 망설여서는 안된다는 게 네오콘들의 주장이다.

신보수주의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친(親)이스라엘이다. 그 이유는 멀리 찾을 것도 없다. 신보수주의의 시조 쯤으로 간주되는 어빙 크리스톨 미국 기업연구원(AEI) 연구원 겸 '공익
(the Public Interest)'지(誌) 발행인을 비롯해 그의 아들 윌리엄 크리스톨, 울포위츠, 케이건 부자, 리처드 펄 등 핵심 멤버들이 유태인이다.

신보수주의의 출발은 역설적이지만 좌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보수주의 1세대 중에는 한때 막시즘이나 트로츠키주의에 빠졌던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1960~1970년대를 거치면서 우파로 돌아섰다. 어빙 크리스톨의 표현을 빌면, 이같은 전향은 “현실세계를 배워가면서 눈을 뜨게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보수주의는 또 할리우드 배우 출신이면서 1980년대 냉전 승리를 이끈 것으로 미국인들이 평가하는 레이건 대통령을 높이 평가한다. 실제 신보수주의의 젊은 이념가들은 레이건 행정부를 전후해 워싱턴에 입성한 사람들이 적지않다. 신보수주의자들이 본격적으로 결집한 계기는 클린턴 민주당 행정부 때 “힘을 갖고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미국의 나약한 모습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1997년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라는 싱크탱크를 만들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고, 네오콘의 복음서인 '주간 스
탠더드'가 세계적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의 자금으로 발행되기 시작한 것도 이 때였다.

네오콘의 힘은 인맥이다. 어빙 크리스톨은 지금도 정부와 학계, 언론계, 싱크탱크에 신보수주의자들의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부시 현정부내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체니부통령이다. 같은 네오콘인 스티븐 해들리를 수석 부보좌관으로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 곁에 둔 것도 체니다. 지난 69년 럼즈펠드의 참모로 공직을 시작한 체니는 포드 행정부 시절 백악관 비서실장직을 그로부터 넘겨받았고, 그래서 누구보다 인맥의 중요함을 아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신보수주의자들은 엘리트주의에 대한 믿음을 애써 숨기지도 않는다.

이들이 신봉하는 것은 힘(power)이다. 신보수주의의 강령이라고 할 수 있는 PNAC 창립선언을 보면 이들이 구상하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모습이 보다 선명해진다. “우리는 미국의 안전과 번영, 미국의 원칙에 우호적인 국제관계를 보전하고 확대해야 하는 미국의 고유한 임무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크리스톨과 함께 네오콘 이론가로 활약중인 로버드 케이건은 작년 여름에 발표한 ‘힘과 나약함(Power and Weakness)’이라는 논문에서 “미국의 헤게모니야말로 세계평화와 국제질서를 지키는 유일한 방어선”이라고 주장해 엄청난 파문을 낳았다. 제국(帝國) 미국을 가로막는 걸림돌들은 반드시 제거하겠다는, 섬뜩한 의지로 가득찬 것이 바로 오늘의 미국을 움직이는 신보수주의인 것이다.

이같은 신보수주의의 흐름과 주장을 이해하는 데 참고할만한 글들로는 앞서 소개한 케이건의 ‘힘과 나약함’(미국 ‘policy review’지 2002년 6~7월호 게재, 최근 국내에 번역된 ‘유럽 vs 미국’이라는 책은 이 글을 확대·개편한 것임)이라는 논문과 윌리엄 크리스톨이 발행하는 ‘주간 스탠더드 (www.weeklystandard.com)’ 잡지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이같은 신보수주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는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의 골격을 이해하려면 2002년 9월에 발표한 ‘미국의 국가안보 전략 (The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the USA)’이라는 보고서와 ‘테러와의 전쟁에 관한 국가전략(National Strategy for Combating Terrorism)’ 등을 비롯한 부시 행정부가 최근 내놓은 안보전략 관련 보고서 등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케이건의 '힘과 나약함'이라는 논문과 PNAC(www.newamericancentury.org) 창립선언문 등 두 건을 첨부하며, 그리고 앞에 예시한 미국 국가안보전략 보고서(The National Secruty Strategy of the U.S.A., September, 2002)와 '테러와의 전쟁에 관한 국가전략(National Strategy for Combating Terrorism)는 각각 인터넷 사이트
(http://www.whitehouse.gov/nsc/nss.pdf)


(http://www.whitehouse.gov/news/releases/2003/02/counter_ terrorism /counter_terrorism_strategy.pdf)에서 원문을 읽을 수 있다.

(박두식 논설위원 dspark@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