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가 얼마 전 어느 대담프로에서 '성공'의 정의를
묻는 질문에 "편안하고 즐거운 상태에 이르는 것"이라고 한 대답과, 몇
해 전 정명훈 역시 "피아노를 좋아하다 보니 어느새 피아니스트가 되어
있더라"고 한 얘기는 퍽 인상적이다. 이 두 사람의 말을 엮어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다보면, 마침내 편안하고 즐거운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이치와, 나아가 그들의 내면 속에 '시간의
현재성이 지니는 삶의 황홀함'이 살아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위대한 예술가들을 흠모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성공'이라는 허깨비를 높은 제단에 모셔놓고 숨가쁘게 쫓아가는
동안, 자신이 자기 삶의 노예가 되어, 주체적 삶의 희열을 느끼지
못한다면, 피흘리며 쟁취하는 외양(外樣)의 성공은 결코 내면의 진정한
위안이 될 수 없다. 고지를 향한 왜곡된 집착이 오히려 감옥처럼 삶을
송두리째 가두거나, 결국에는 껍데기뿐인 나신(裸身)을 드러내게 될지도
모른다. 성급한 목표지향이나 결과론에 치우친 가치관에서 오는 고통은
벗기 힘든 무덤이다.
하지만 대상과의 일치감에서 만나는 삶의 황홀함은 신화적
홀로서기이며, 삶의 원형적 의미를 갖는다. 성공을 향해 매진하는
사람들은 잠시 숨 고르며 돌아봐야 할 일이다. 어떤 외적가치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속에서 자기 내면의 살아있음을 경험하는 기쁨, 이것이
'진정한 삶의 춤'이란 것을.
(임경림·2003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부문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