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호화 호텔들이 숲을 이룬 라스베이거스여서 사하라호텔은 더욱 낡고
초라했다. 이 2류 호텔 프런트에 길게 늘어선 아침 체크아웃 행렬 속에
그는 서 있었다. 인텔 CEO, 앤디 그로브 사장이었다. 세계 최대
반도체기업 총수가 수행직원 하나 없이 큰 가방을 든 채 지루하게
줄어드는 행렬에 매달려 있었다. 10여년 전, 컴퓨터박람회 '컴덱스'
취재를 갔다가 목격한 그로브의 소탈한 면모였다.

'편집증 환자만이 살아 남는다'는 저서처럼 그로브는 대표적인 일
중독형(型) CEO다. '존경받는 기업인'에도 단골로 꼽히는 것은
자기부터 권위를 버리고 일궈낸 수평적 기업문화와 입지전적 성공담
덕분이다. 하도 부지런해서 '미친 헝가리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듯 그는
유태계 헝가리 사람이다. 1956년 소련 탱크가 부다페스트에 밀려들자
미국으로 탈출했다. 무일푼에 영어 한마디 못했던 스무살 청년은 고학
끝에 뉴욕시립대를 수석 졸업했고, 버클리대 공학박사가 됐다.

그로브는 집적회로를 발명해 노벨상을 받은 밥 노이스, 화학교수 출신
고든 무어와 함께 68년 인텔을 창업했다. 무어는 '반도체 칩 성능이
18개월마다 곱절로 높아진다'며 업그레이드 추세를 예견했다. 메모리
D램을 개발해 급성장하던 인텔은 80년대 일본의 덤핑공세를 받아 큰
적자에 빠졌다.그로브는 망하기를 각오하는 도박을 걸었다. 메모리 칩을
포기하고 컴퓨터 '두뇌'격인 마이크로프로세서 제조로 방향을 틀었다.
'무어의 법칙'이 적중하면서 인텔은 386·486·펜티엄으로 이어지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세계 PC의 80%에 공급하게 됐다.

그로브는 98년 크레이그 배럿에게 CEO를 물려주고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났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그의 사무실은 여전히 화젯거리다.
칸막이를 친 4㎡ 공간이니 방이랄 수도 없다. 주변 직원들과 똑같은
크기다. 전용 주차공간도 없어 걸핏하면 차 댈 곳을 찾아 헤맨다.
그에게서 비롯하는 서열파괴를 통해 인텔은 도전과 창의를 북돋운다.
신참 연구원을 가장 까다로운 작업에 배치하는 것부터 그렇다. 뭐가
불가능한지 모르는 신참들은 가끔씩 '큰 일'을 낸다.

지난해 종업원 7만8000명이 매출 270억달러를 올린 인텔이 아시아에
100억달러 규모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여러 나라가 유치경쟁에 나선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이 방미길에 배럿 회장을 만난다고 한다.
성사된다면 사상 최대 해외투자유치일 뿐 아니라 창조적 기업경영을 배울
기회가 될 것이다. 한데 재경부 고위간부는 "인텔이 한국에 대해 가장
걱정하는 게 강경 노조"라고 했다. 열악한 기업여건을 감당할 수 없어
대기업도 줄줄이 해외로 떠나는 상황을 인텔이 모를 리 없을텐데.

(吳太鎭논설위원 tjo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