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행-이리키-모리-김영화 (시계방향)

일본프로야구는 한국프로야구보다 강한가.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투수의 섬세함과 변화구, 타자들의 맞히는 능력은 분명 일본이 한 수 위다. 한국은 파워와 기동력에서 앞선다. 50년이 넘는 세월을 자랑하는 일본야구와 이제 22년이 된 한국야구를 같은 저울위에 놓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올시즌 일본파의 대거 포진으로 예견됐던 '열도 돌풍'은 이미 '찻잔속의 소용돌이'로 치부되고 있다. 롯데에 입단했던 일본인투수 모리는 시즌개막도 못보고 봇짐을 쌌고, 재일동포 3세 한화 고지행도 22일 "적응이 안된다"며 손사래를 치며 임의탈퇴선수가 됐다. 롯데의 재일동포 포수 김영화는 2군에 꼭꼭 숨어 안보이고, 일본야구에서 힘깨나 쓰던 롯데타자 보이는 부진을 거듭하더니 '퇴출 철퇴'를 맞았다.

두산 마무리 이리키는 22일 LG전서 첫 세이브를 따냈지만 시들한 스피드로 걱정을 한몸에 받고 있다. SK 타자 디아즈 역시 일본에서의 실력이 발휘되지 않고 있다. 왜 일까. '가까우면서도 먼 이웃' 일본. 야구 역시 비슷하지만 분명 다르다.

▶너무 얕잡아 봤다

퇴출된 롯데의 보이(37)는 지난해 일본프로야구 요코하마서 타율 2할6푼2리에 18홈런 60타점을 올린 선수다. 롯데는 나이가 맘에 걸렸지만 '일본에서 18홈런이면 한국에선?'하고 선뜻 모셔왔다. 시범경기가 끝나갈 무렵 보이는 뜻밖에도 "한국투수들이 엄청나다"며 상대를 추켜세우고 나섰다. 헛방망이질의 연속. 한화 고지행 역시 시범경기에 반짝하더니 이내 꼬리를 내렸다. 뜻대로 안되자 유승안 한화 감독의 '초구 스테이 사인'까지 어기고 맘껏 휘두르다 자멸했다. 새로운 환경에선 겸손하게 주위를 살피는 것이 우선이다.

▶한국은 일본 너머 미국을 배운다


일본의 야구주간지 '슈칸베이스볼'은 지난해 아시안게임 야구서 한국이 금메달을 획득하자 양
국 야구를 정밀분석했다. 결과는 '단기전에선 우열을 가리기 힘들고, 장기 페넌트레이스는 일본이 유리하다'였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과 일본의 야구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일본은 섬세하지만 한국은 선이 굵은야구를 더 선호한다.

한국야구는 70,80년대까지는 일본야구와 많이 닯았지만 90년대 들어 메이저리그로 점차 눈길을 돌렸다. 타자들의 파워스윙과 투수들의 빠른 승부는 메이저리그를 닮아가고 있다.

박찬호 김병현 등을 비롯한 메이저리거들의 활약을 보면서 일반팬들 뿐만 아니라 야구인들 역시 메이저리그를 많이 접했다. 무사 1루서 감독들의 뇌리엔 보내기번트 뿐만 아니라 강공, 히트 앤드런도 함께 떠오른다. 선수들은 지난 98년부터 외국인선수, 주로 메이저리그나 마이너리그를 접한 미국파들과 함께 훈련하며 웨이트트레이닝 등 '미국식 야구'를 더 손쉽게 접하게 됐다.

▶함량미달?

단순계산은 문제를 불러오기 쉽다. 선동열 이종범 정민철 정민태 등 한국최고선수들이 일본진출 첫해에 고전했다고 해서 '일본야구가 훨씬 낫다'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절정의 기량, 나아가 발전가능성이 있다면 높은 연봉을 약속받는 일본에 남아있어야 옳다.

한국에 진출한 일본파가 지니고 있는 나름대로의 약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두산 이리키는 부상여파로 지난해 공백이 있었고, 보이와 김영화는 내일 모레면 불혹의 나이다. 고지행은 일본파지만 일본프로야구를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신출내기에 가까웠다. 모리 역시 A급 일본선수는 아니었다.

▶우월감-적응의 걸림돌

유승안 한화 감독은 고지행에 대단히 실망했다. 재일동포 3세이지만 한국말을 전혀 모른다. 아예 '안녕하십니까'라는 말도 배우려 들지 않았다. 2년간 미국 마이너리그를 경험해 간혹 간단한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다. 코치들에게 깍듯하지 못하고, 직원들에게도 거침없이 항의하곤 했다. 그런 고지행이었지만 정작 한번도 같이 운동한 적이 없는 두산 이리키에겐 시범경기서 공손하게, 그것도 타석에서 모자를 벗어 인사를 하기까지 했다. 개인차이라고 치부하기엔 한국과 일본은 얽히고 설킨 일이 너무 많다.

(스포츠조선 박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