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번역어를 찾기 힘든 낱말이 있다. 가령 영어의 '플라이버씨'나
일어의 '이지메'가 그런 사례일 것이다. '이지메'에 근접한 말로
집단 따돌림이나 왕따란 말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지메'는 반드시
집단적인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기보다 약한 입장에 있는 자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일'이라는 정의가 일어사전에 보인다.
'이지메'는 비참을 뜻하는 '미지메'란 말과 소리가 비슷해 각별한
울림을 지닌 것 같다. 민담에 나오는 계모의 자식 구박이나 시어미의
며느리 구박이나 크게 보면 이지메의 범주에 속할 것이다. 학교나
직장에서 복수의 인물들이 특정인을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현상이
보도되면서 왕따란 말이 유행하게 되었다. 영어의 bully는 동사로는
'이지메'의 뜻이지만 명사로 쓰일때는 약자를 괴롭히는 자를 뜻한다.

서머셋 몸의 장편 '인간의 굴레에서'의 주인공 필립 캐어리는
조실부모하고 목사인 숙부집에서 자란다. 아홉살에 예비학교에 들어간
그를 그다리고 있는 것은 동급생의 괴롭힘이다. 다리를 저는 필립에게
발을 보여달라고 조르며 정강이를 걷어차는 악동이 있다. 그러나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집단적 괴롭힘이다. '필립을 에워싸고 아이들은 흉측한
모습으로 절룩절룩 뛰어다니면서 괴성을 지르기도 하고 깔깔대고
웃어대기도 했다. 아이들은 이 새 놀이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넋이 나가고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한 아이가 필립의 다리를 걸었다. 넘어질 때는
언제나 그렇듯이 필립은 쿵하고 쓰러져 무릎이 찢어지고 말았다. 겨우
몸을 일으키자 아이들이 더 크게 웃어댔다.' 아이들은 다시 주위를
맴돌며 깔깔대고 흉내를 내어 필립은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는다.

위에서 집단적 괴롭힘은 재미있는 놀이가 되어 있다. 신참자인 필립이
다리를 저는 것은 각별한 공격을 자아낸다. 공격 유발성을 이중으로
가지고 있는 셈이다. 동정을 받아야 할 처지 바로 그것이 공격을
유발한다. 신체적 장애나 기형, 부모의 특수 직업, 사투리의 사용등이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의 표적이 된다. 인류 최초의 소수파는
왼손잡이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주류나 다수파에서 일탈한 모든 것이
공격을 유발한다.

다수파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집단 괴롭힘의 표적이 된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보이는 장면이 좋은 사례다.
주인공 스티븐 디댈러스는 저녁나절 거리에서 동급생 세 사람과
마주친다. 시인이 화제에 올라 누군가가 테니슨이 최고의 시인이란 말을
한다. 스티븐은 자기도 모르게 테니슨은 엉터리라 말해버렸고 그러면
누가 최고냐는 물음에 바이런이라고 대답한다. 동급생 하나가 지팡이로
스티븐의 다리를 내리친다. 이것을 신호로 그들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냇쉬는 그의 두 팔을 뒤로 비틀었고 볼랜드는 하수구에 놓여있던 기다란
배추 포기를 움켜 잡았다. 지팡이와 배추 포기의 타격을 받으면서
몸부림을 치고, 발길질을 하고 있던 스티븐은 어떤 철조망 울타리까지
밀려가게 되었다. 눈물로 앞을 보지 못한채 미친듯이 주먹을 움켜쥐고
훌쩍이는 스티븐을 남겨두고 그들은 자리를 뜬다.

이른바 왕따의 전형적인 인물은 윌리암 골딩의 '파리대왕'에 나오는
'돼지(Piggy)'일 것이다. 본명은 제시되어 있지 않고 별명만으로
통하는 유일한 등장인물인데 이 사실 자체가 왕따임을 보여준다. 눈이
나쁜데다 그에겐 천식이 있다. 말씨로 보아 집안도 어렵고 빈약한 교육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안경잡이에다 동작이 굼뜬 것은 사실이나 그는
지혜로운 꼬마 지식인이다. 그는 합리적 통솔자인 랠프의 브레인 역할을
하지만 사냥패의 두목인 잭과의 대결속에서 제일 먼저 희생되어 목숨을
?는다. 신체적 결함, 빈민 출신, 특이한 말씨, 두뇌의 활용 등이 공격을
유발하여 왕따의 여러 조건을 충족시켜 준다. 그 또래 중의 유일한
지식인인 그가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도 소설속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사회속의 갈등이 심화 증폭되면서 여러 형태의 이지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 증오를 부추기는 현상도 이를 조장한다. 증오 자체가 공격성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유종호/문학평론가·연세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