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감은 있지만 각 분야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은 국가 발전을 위해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부존자원도
많지 않은 우리나라가 맨파워의 반 정도에 해당하는 여성인력에게
참여기회마저 제한한다면 결과는 자명하다.
오래 전 여직원 채용 면접을 하면서 아주 똑똑해 보이는 여성에게 손님이
오셨을 때 차(茶)를 대접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 여성은 "남직원이 쟁반을 들고 다니는 것보다는 여직원이 차(茶)를
대접하는 것이 훨씬 아름다워 보이더라"고 대답을 했다.
80년대만 해도 직장에서 여직원들은 '꽃'으로 지칭되면서 상사는 물론,
선배들의 이른바 심부름으로 분류되었던 담배 사오기·물
떠다주기·차(茶) 타주기 등이 암묵적으로 당연시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이러한 관행은 대체로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간혹 차(茶)
심부름과 대접 사이에서 갈등이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심부름과 대접' '자존심과 권위의식' '절대평등과 기초예절'의
혼란에서 생긴 것으로 일시적인 진통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 잘 나가는 중견기업체의 임원으로 재직 중인 선배 회사를 찾은
적이 있었는데 그 임원이 자기 집무실에서 차를 직접 타주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보였다. 지금은 남자사원들도 차(茶) 대접을 하고,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차를 타준다든가, 상하 구분 없이 먼저 본 사람이 인사하는
것 등이 자연스러워졌다. 나 자신도 내가 사장으로 있던 회사의 직원들이
사무실을 방문하면 내가 직접 물을 끓여서 차를 대접한다든지,
어린이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번에 교육현장에서 차(茶) 심부름 문제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자살까지 하게 된 사건은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경직된 대화 자세와 일방적인 타협문화, 과도한 이기심의 표출, 지나친
권위의식이나 단편적인 평등의식을 되짚어봐야 하는 시점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시각으로 보면 쉬워진다. 그것을 심부름이나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이고, 예의이고, 대접이고, 섬김의
실천이라고 생각하면 기쁨이 되는 것이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는 말도 있다.
(柳福錫 / 52·전문경영인·서울 서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