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인기가수 장나라씨의 팬클럽 창단식에서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50대 외국인이 눈길을 끌었다.

주인공은 크리스티안 뮐레탈러 (Christian Muhlethaler·55) 주한
스위스 대사.

스위스 홍보대사로 위촉된 장나라와 장씨 팬들에게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 참석한 것이었다. 뮐레탈러 대사는 홍보 대사로
위촉된 연예인 팬클럽 모임뿐 아니라 대학 강의·TV출연·각종 행사 등
스위스를 알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않는 '발로 뛰는'
외교관이다. 2000년 8월 서울에 부임한 이래 자신이 참석한 모임 횟수를
모두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고 했다. '스위스 알리기'와 함께
'한국 알기'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그 나라를 제대로 알려면 우선 그
나라 언어를 배워야 한다며 그는 부임 직후부터 꾸준히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5개국어를 구사하는 '언어의 달인' 수준인 그도
"한국어가 너무 어려워 아직도 한국어 실력은 형편 없다"고
쑥스러워했다. 그러면서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시골 논바닥에
혼자 내버려져도 길이나 시간은 물을 수 있다"며 웃는다.(실제로 인터뷰
도중 '물 드실래요'라고 한국말로 직접 권해 놀라게 했다)

뮐레탈러 대사는 한국 음식을 좋아하며 한국 요리에도 상당한 안목을
갖고 있다. "번데기 빼고는 한국음식은 뭐든 잘 먹는다"는 그는
"한국을 떠나기 전에 불고기를 양념해서 재우는 법은 꼭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보여주며 자신이 곰방대를 모은 얘기를
꺼냈다. "파이프 모으기가 취미인데 15세 때부터 수집한 파이프가 750개
정도입니다. 한국의 파이프인 곰방대도 빼놓을 수 없지요."

올해는 스위스가 중립국감독위원회(Neutral Nations Supervisory
Commission)의 일원으로 휴전을 감독한 지 50주년을 맞아 여느 때보다 더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다고 한다. 휴전 감독 50주년을 기념, '벤치마킹
프로젝트(BenchMarking Project)'를 준비 중인 뮐레탈러 대사는 한국
작가 15명과 스위스 작가 10명이 디자인한 벤치를 다음달 22일 남산
공원과 상암동 월드컵 공원 내 평화공원에 기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쉬면서 예술작품을 즐기는 동시에 자유와 평화에
대한 메시지도 함께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판문점을 10여 차례 가보았다"면서 "그 곳에 가면 전쟁이니
분단이니 하는 현실이 실감나면서도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