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국무총리가 정부중앙청사 통합 브리핑실의 별관 설치를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전후(前後) 사정은 오늘 참여정부 총리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고 총리는 당초 국정홍보처장으로부터 브리핑실을 본관에 두는
것으로 보고받았다가, 별관으로 옮긴다는 최종 계획은 신문을 보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검토를 지시했던 총리실 전용 브리핑실 역시
반영되지 않았다. 총리가 그간 국정 논의와 결정 과정에서 겉도는 인상이
짙더니 급기야 이런 일까지 벌어진 것이다.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이른바'책임 총리'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했던
것과 딴판으로 그간 총리의 목소리는 울려나오지 않았고, 다른 목소리들에
덮여버리기도 했다. 총리가"경제상황을 고려해 재벌 부당 내부거래 조사를
미루는 게 좋겠다"고 말하기 무섭게 공정거래위원장이'조사 강행'을 밝히는
식이다.

지금 총리 위상이 예전 정권들의'대독(代讀) 총리'만도 못해 보이는 것은
무엇보다 대소 현안들에 직접 나서는 대통령의 국정 처리태도에서 비롯한다.
대통령이 젊은 검사들이나 특정 방송사 노조를 만나 담판을 벌이고
'오보와의 전쟁'을 독려하는 일선 사령관 역까지 도맡는 상황에선 그 어떤
총리라 해도 국민들 눈에 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차관급인
홍보처장도 언론대책을 직접 지휘하는 대통령의 뜻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뿐,
그 눈엔 총리 모습이 보이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나랏일엔 대통령이 할 일이 있고 총리나 장·차관할 일이 따로 있다.
국정 조정기능이 실종되면서 정부 정책이 잇따라 혼선을 빚고 있는 것도
각자 격에 맞는 국정 분담의 제자리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총리 역할론'에 진정한 무게가 실리려면 대통령이 자신이 나설 일과
총리가 맡아야 할 일에 분명한 선을 긋고, 그에 따라 총리에게 걸맞은
권한과 책임을 되돌려주는 길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