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 용사와 더불어 불타는 젊음을 바친 펜의 기수18명, 먹물은
쓰러져도 기자의 얼은 푸르다. 그 영광의 희생 길이 정의를 밝히리."
경기도 파주에 있는 6·25 전쟁 종군기자 추모탑의 이 비문은 '여기는
보도의 명예와 승리가 서린 곳'으로 시작한다. 전쟁터에서 취재하다
숨진 한국·미국·영국·프랑스·필리핀 등 5개국 기자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것이다.
6·25 때 한국의 종군기자들은 사실 문인단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종군작가단으로서 부대에 배치돼 반공과 애국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거나 연극과 강연회를 가졌다. 구상, 정비석, 유치환, 마해송, 조지훈,
최정희, 박두진, 박목월 등 당대의 유명 문인 대부분이 종군기자였다.
세계적으로도 종군기자들은 역사적 현장에 서 있었던 탓인지 문학과
연관이 많았다. 스페인내전을 무대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남긴 헤밍웨이는 물론 세계적인 시집 '희망봉을 돌아서'의
노르웨이 시인 그리그 역시 2차대전 때 영국 종군기자로 베를린 폭격에
참가한 문인이다.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이 받은
노벨상은 평화상이 아닌 문학상이었다. 젊은 시절 보아전쟁 때 데일리
그래픽 종군기자로 갈고 닦은 필력(筆力)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회고록을
노벨상위원회가 높이 평가한 것이다.
종군기자들은 늘 한 걸음이라도 더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최전선을 원하기 때문에 그만큼 희생도 크다. 베트남 전에서는 연인원
6000여명의 종군기자 중 54명이 숨졌다. 기자의 희생이 없었던 지난 90년
걸프전 때도 기자들은 1인당 150만달러의 보험에 들고 현장으로
내달았다.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는 1000여명의 기자 중 12명이 사망했다.
미국 CNN의 전설적인 종군 여기자인 아만푸어는 이를 두고 "기자는
참호에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전쟁의 진실을 알 수 없다"고 했다.
'미디어 전쟁'이라는 소리를 듣는 이라크 전쟁은 좀 미묘하다. 미군
사상자 수는 미국내 여론의 향방을, 이라크 민간인 피해자수는 세계
여론의 향방을 가늠하는 상황이라 언론이 상대방을 공격하는 심리전의
도구가 돼버린 느낌이다. 이 때문에 종군기자들이 전쟁의 또 하나의
변수이자 타깃이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전 세계 기자들이
벌이는 취재경쟁이 기자들을 더 위험한 곳으로, 더 최전방으로 몰아넣고
있다. 우리가 이번 전쟁을 안방에서 전쟁영화 관람하듯 지켜볼 수 있었던
데는 군인사망률(0.04%)보다 25배나 높은 희생을 치른 종군기자들의
섬뜩한 프로정신 덕분인 셈이다.
(崔源錫논설위원 yuwhan29@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