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한 줄의 시, 한 줄의 잠언을 읽는 듯한 그림책을 만나면,
그림책이란 게 단지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님을 강변하고 싶어진다.
그림만 보고 있어도 삶의 어느 길목에선가 상처받았던 마음 부위를
소리없이 치유받는 듯한 느낌. 그래서 그림책에 빠져드는 성인
마니아들이 늘어나는가 보다.

시인 함정임씨가 번역한 실베스트르 (에릭 바튀 글·그림, 함정임
옮김)는 바튀의 전작 '내 나무 아래에서'에 이어 자연이란 존재를
골똘히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숲의 요정으로 짐작되는 실베스트르는
신기한 재주를 가졌다. 그가 심은 씨앗은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금세
커다란 나무로 자라는 것이다.

어느날 도시로 간 실베스트르는 온통 회색빛인 도시를 보고 깜짝 놀란다.
피뢰침과 안테나만이 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무마냥 솟아있을 뿐인
삭막한 도시. 그래서 밤새 수많은 씨앗을 도시 곳곳에 뿌린다. 하루
아침에 푸른 세상을 얻은 도시인들은 뛸 듯이 기뻐한다. 실베스트르에게
당신처럼 계속해서 나무를 심겠다고 약속까지 한다. 과연 그 약속은
지켜질까. 서정적인 문체, 단순하지만 강렬한 에릭 바튀의 그림을
한장한장 넘길 때는 행복감마저 느껴진다. 문학동네어린이

빨간 모자 아저씨의 파란 집(안느 에르보 글·그림, 양진희 옮김)은
그림이 먼저 마음을 사로잡는 책이다. 연필선이 뚝뚝 묻어나면서도
짓푸른 바다와 붉은 땅을 여러 형태로 대비시켜가는 작가는 '그림책은
이래야 한다'는 진수를 보여주는 듯하다.

오랫동안 세상을 떠돌아다녔던 빨간 모자의 나그네는 해님과 모래와
바다가 펼쳐진 곳에서 낙원을 발견하고 집을 짓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집, 자연과 벗할 수 있는 집. 하지만 크고 하얀
집이 완성되자 깃털 뭉치 새들은 작고 볼품 없는 집이라며 놀려댄다.
그래서 이번엔 바다처럼 파란색으로 집을 칠하고 새가 그려진 조각들을
벽에 붙여본다. 하지만 여전히 비웃는 깃털 뭉치 새들. 마침내 그는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집을 짓게 되는데, 그건 바로 하늘, 그러니까
허공에 짓는 집이다. 마음의 행복은 욕심을 버리는 데서 오는 법. 두번은
읽어봐야 "아하!" 하고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조금은 심오한
그림책이다. 교학사

(김윤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