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나무의 나라에서는

꽃이 지기 전날

조등을 내건다

봄밤

문상 온 나

화사한 시포(屍布)에 싸여

등을 활짝 켜놓은

목련꽃잎

소멸이 환하다

--[아름다운 문상 - 권영준] 전문


아름다운 봄밤의 풍경에서 굳이 죽음의 향기를 맡고 마는 시인의 후각은
예민한 것일까, 아니면 병적인 것일까. 활짝 핀 꽃을 앞에 두고도 시인은
그 눈부심에 찬탄을 보내기보다 그것이 다 지고 난 다음의 덧없음을
예감한다.

따라서 꽃의 개화는 죽음을 목전에 둔 존재가 마지막으로 치르는 작별의
예식에 가깝다. 생의 절정은 죽음과 통한다. 모든 존재는 자신을
결정적으로 드러내는 현전의 순간 소멸의 단계로 진입한다. 나타남과
사라짐이 하나가 되고 상승의 운동과 하강의 운동이 하나의 둥근 원환을
그린다.

권영준의 시집 '불의 폭우가 쏟아진다'(천년의 시작)에 실린 시편들엔
한결같이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죽음의 편재성을
추적하는 이 시인의 언어는 억지스럽지 않고 의표를 찌르는 당돌함과
순발력을 보유하고 있다. 봄밤 화사하게 핀 꽃들을 완상하며 거니는 것을
"문상"에 비유하는 시인의 어법은 얼마나 개성적인가. 여기저기
꽃나무에 핀 꽃들이 조등에 다름아니라는 시인의 전언은 삶의 무상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꽃나무가 등을 켠 길을 따라 어디론가 문상을 떠나고 싶은 밤이
우리에겐 있는 것이다.

(남진우 / 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