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 ‘한사랑마을 ’에서 생활재활교사 체험을 하고 있는 최보윤 기자가 원생에게 간식을 먹여주고 있다.이곳의 원생들은 음식물을 잘 씹지 못해 밥과 반찬을 섞어 숟가락으로으깬뒤한입씩 떠먹여야 한다.<a href=mailto:wjjoo@chosun.com>/주완중기자 <

한 꼬마가 나를 보자, “엄마” 하며 달려든다. 6세 동한이다. 내 등에 붙어 몇 분 동안 떨어지지 않는다. 동한이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다. 뇌성마비 장애가 있다는 게 밝혀지면서 동한이는 입양의 꿈을 버려야 했다. 친해지려는 것일까. 동한이가 파란색 호루라기를 내밀었다.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라고 한다. 호루라기 주변은 침범벅이다. “나중에 불면 안 될까”라고 간신히 피했다. 화난 표정이다. 옆에 있던 선생님이 달래주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후” 하고 부는 게 아닌가.

2박3일 ‘한사랑 마을’ 체험은 이렇게 시작됐다. 경기도 광주 시골에 자리잡은 ‘한사랑 마을’은 1급 중증 장애인을 돌보는 복지기관이다. 이곳 장애인 213명 거의가 식사·대변·이동·의사표현에 지장이 있다. 장애인의 40%는 고아 등 무연고자다. 나머지는 생활보호대상자와 월 20여만원을 내고 들어오는 입소자들이다. 80%가 15세 이하다. 영아원은 ‘누가방’ ‘디모데방’ ‘마태방’ 등 7개의 방과 놀이방·물리치료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활치료가 가능한 아이들이 모인 ‘마태방’을 내가 맡았다. 점심식사 시간이다. 내 담당은 ‘영아원의 이영애’라는 이영주(가명·여·7)다. 영주는 뇌에 물이 차는 수두증을 앓고 있고 뇌성마비 증세도 보인다. 머릿속을 실리콘관이 관통하고 있으며 신장까지 이어져 뇌에 찼던 물은 소변과 함께 나온다. 하얀 살결, 커다란 눈, 짙은 속눈썹을 가진 영주는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영주는 음식물을 거의 씹지 못한다. 밥과 반찬을 섞은 뒤 가위로 잘게 자르고 숟가락으로 으깬 뒤에야 한 입 먹일 수 있다. 밥을 먹이기 위해 영주와 얼굴을 맞대고 앉았다. 이동식 의자에 앉혀 먹이는데 팔이 또 경직되어 식판 위에 놓인 밥그릇을 엎었다. 우유도 같이 엎어졌다. 김치와 햄을 으깬 것이 범벅이 되어 내 머리와 얼굴 위로 쏟아졌다.

손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을 막기 위해 식판 겸 나무판자를 영주 가슴에 덧댔다. 목을 가누지 못하기 때문에 내 왼쪽 손으로 이마를 짚고 밥을 먹여야 했다. 음식의 반을 흘린다. 밥 한 숟가락에 국을 꼭 떠줘야 넘길 수 있다. 이도 몇 개 없어 혀로 음식물을 굴려 겨우겨우 넘기는 영주는 힘에 겨운지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능숙하지 못한 내가 짜증이 나는지 먹으면서 계속 인상을 찌푸린다. ‘내가 마음만 앞서 아이들을 오히려 더 힘들게 하지는 않는지’라는 후회가 들었다. “영주야, 미안해”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 그릇 먹이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린다.

식사를 마친 뒤 설거지를 했다. 아이들 얼굴과 입을 닦는 수건은 위생상태가 중요하기 때문에 1차로 헹군 뒤에 빨랫비누를 이용해 빨래판에 빨아야 한다. 앉아서 20분이상 빨다 보니 다리가 저려온다.

오후 1시가 다 됐다. 목욕시간이다. 오늘은 경기도 광현교회에서 봉사를 나왔다. 영아원은 2개의 방이 화장실을 사이에 두고 배치돼 있다. 주방을 통해 옆방으로 이동할 수 있다. 한 교사가 자리를 비우면 옆방 교사가 두 개의 방을 관리해야 한다. 옷 갈아 입히는 것은 내 몫이다. 몸이 뻣뻣한 아이 3명을 각각 두 팔로 안은 뒤 옷을 입혔다.

이곳 장애아들의 꿈은 ‘입양’이다. 국내 입양은 ‘가정위탁 프로그램’을 거쳐야 한다. 입양 의사가 있는 부부가 장애아를 1~2년 데리고 살면서 입양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입양이 성사된 것은 1988년 개원 이후 단 2건뿐이다. 한 재활교사는 “장애 없는 아이도 입양하려 하지 않는 세태인데, 하물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오후 3시, 간식을 먹인 뒤 잠시 숨을 돌리나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2시간에 한 번씩 7~8명 장애아의 기저귀를 갈아줘야 한다. 잠들지 않은 아이들은 놀이방에 데려가 계속 놀아줘야 한다. 경직증세가 있는 아이들의 다리를 마사지해 주느라 팔이 온통 뻐근하다.

“잠시도 눈을 떼면 안 돼요. 일하는 10시간 중 1분이라도 자리를 비웠다가 아이들이 경기라도 일으키면 큰일이거든요.”

재활교사 김성민(여·27)씨가 한 수 가르쳐준다. 이곳에 근무하는 생활재활교사는 78명. 매일 전쟁 치르듯 하는 중노동으로 병원신세를 지지 않은 교사는 거의 없을 정도다. 몸집이 큰 남자아이를 맡는 교사들은 막노동보다 몇 배는 힘들다고 말한다.

교사들은 대학에서 사회복지학 등을 전공, 사회복지사 1급 혹은 2급 자격증을 갖고 있다. 2급 자격증(2년제 졸업시) 소지자의 평균연봉은 1300여만원. 세금을 떼면 한 달에 100만원 조금 넘는다. 법 규정으로만 따지면 교사 1명이 5명의 장애인을 맡게 돼 있지만, 사정이 나은 편이라는 이곳에서도 7명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오전 3시쯤 쾅쾅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재영(7)이가 뭐가 답답한지 화장실 쇠문에 머리를 박는다. 머리엔 벌써 생채기가 나 피가 조금 고여 있었다. 겨우 진정시킨 뒤 재영이 옆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 5시에 겨우 눈을 떴다. 아침부터 내가 맡은 ‘야곱방’이 부산하다. 자원봉사자만 오면 소리를 내며 매달린다는 은아는 오늘도 역시 쉰목소리로 “엄마, 엄마” 하며 따라다닌다.

어제의 경험이 뒷받침돼서 오늘은 세 아이 식사를 한꺼번에 맡았다. 경민이와 선희, 정은(가명·여·9)이를 둥글게 앉힌 뒤 돌아가면서 한 입씩 먹인다. 이들은 척추가 굽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된 물리치료용 특수의자에 앉아 있다. 정은이는 이동용 나무의자에 앉힌 뒤 역시 팔은 못 움직이게 나무 식판으로 고정시켰다.

선희는 고개가 꺾여 똑바로 할 수는 없지만 제대로 씹어먹을 수는 있다. 경민이는 식욕이 좋은 편이다. 남이 먹는 순간을 못 참는다. 정은·경민·선희 순으로 한 입씩 먹이는데 자신의 차례가 조금 늦게라도 온다 싶으면 내 머리카락과 옷을 쥐어뜯는다.

내일이면 이곳을 떠날 것이다. 한 발자국씩 걸으려 애쓰는 은아(12), 편식이 심한 정은(9), 시각·청각 중복장애인 다솔(14)….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와 만났던 아이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애정이 항상 부족한 이 아이들은 사람 손을 심하게 탄다. 한번 매달리면 놓아주질 않는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감각으로 새로운 사람이 찾아온 것을 안다. 내 손이 그 아이들의 얼굴을 스칠 때마다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내게 다가오고 싶어 굳어버린 몸을 굴려가며 겨우겨우 가까이 오는 그 애들의 몸부림을 보면서 계속 눈물을 훔쳤다. 한창 부모님께 어리광부리고 사랑받을 나이에 그들은 버림받은 채 장애와 싸우며 스스로 커간다.

떠나는 날이다. 왠지 동한이의 얼굴이 자꾸 눈에 밟힌다. 껴안아 주며 작별인사를 했다. 동한이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내 입에 뭘 갖다 댔다. 그 파란색 호루라기였다. 여전히 침범벅. 하지만 나는 이번엔 머뭇거리지 않고 힘차게 “삐익” 하고 불어줬다. 동한이가 환히 웃더니 호루라기를 내 손에 주는 게 아닌가. 파란 호루라기는 지금 내 주머니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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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마치고

사랑에 목마른 아이들… 교사들 처우·열악한 시설 개선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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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랑마을'로 향하는 차를 타고 가면서 '그 아이들이 나를 제대로
따르기는 할까. 말도 안 통할텐데 통제는 될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지만 그곳의 아이들은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순했고 사랑에
목말라했다. "엄마"라고 부르며 나를 졸졸 따랐고, 가벼운 짜증조차 잘
내지 않았다. 몸이 성치 않은 아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란 예상은 했지만
걸어다닐 수 있는 아이들이 몇 안되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잠시
믿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불편한 몸임에도 스스로 일어나고
조금이라도 나아지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보건복지부 평가 최우수시설로 인정받았다고하는 '한사랑마을'조차도
장애인들을 위한 재활치료엔 열악한 상황이었다. 임금이 평균치보다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주 의사는 한 명도 없었고, 물리치료실은
1년6개월째 물리치료사를 구하지 못해 텅 비어있다. 물리치료용 침대만이
물리치료실을 지킬뿐 몇 개 안되는 기자재는 먼지가 쌓인채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생활재활교사들이 가끔 아이들과 함께 들러 침대에 눕힌 뒤
굳어가는 뼈를 교정하는 것이 전부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영리·비영리법인 산하 신고된 복지관은
350여개이다. 그렇지만 미신고 복지관 1000여개 중 장애우를 위한 시설은
387개로 집계하고 있다. 150만명에 달하는 장애우 중에서 복지기관에서
보호를 받는 사람들은 3000여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