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5년마다 되풀이되는 거센 '개혁 바람'을 맞고 있다.
노무현(盧武鉉)정부 하의 국정원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자리매김과 이를
둘러싼 조직개편을 놓고서이다. 이 때문에 국정원 직원들은 요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손이 잡히지 않는 가운데, 술렁이는 분위기라고
한다.
국정원의 개혁 압력은 크게 세 방향으로 제시되고 있다.
첫째는 노 대통령과 새 정부가 제시하는 것으로 ▲국내 기능 축소
▲대통령에 대한 정치정보 공급 중단 ▲대통령에 대한 국정원장 1대1,
독대(獨對) 보고 중단 ▲국정원 직원의 정부
부처·정당·사회단체·기업·언론사 출입 제한 등이다. 노 대통령은
특히 검찰과 경찰, 군정보기관의 대통령에 대한 직접보고도 없애고, 대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통해 이들 정보를 취합·보고 받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노 대통령은 이와 관련, 3월 9일 평검사들과의 토론회에서 "국정원이
정치권 보고를 가져왔는데, '이런 거 하지 말라'고 돌려보냈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또 3월 12일 야당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취임 뒤
국정원 주례보고를 없앴다"고도 했다.
이 같은 사안들은 하나같이 기존 국정원의 위상을 크게 흔들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에서 국정원 직원들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고 있다.
국정원측이 보다 예민하게 바라보는 개혁의 압력은 시민단체들이
제기하는 국정원의 수사권 폐지 문제이다. 현재 국정원은 국가정보원법에
따라 내란·외환죄,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 국정원 직원의 직무 관련
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갖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정보기관이 수사권까지
보유하는 것은 권력의 비대화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평가한다.
'민변(民辯·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장주영(張朱煐) 변호사는
"과거 중앙정보부·안기부 기관원들은 수사권과 정보수집 권한을 동시에
보유하며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했다"며 "그 결과 정보기관이 정권의
파수꾼으로 전락해 각종 시국사건, 간첩단 사건을 조작했다"고 말했다.
장 변호사는 정보기관은 보안(안보)업무만을 수행하고 각종 수사권은
검찰과 경찰에 넘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국정원이 내부직원들의
직무관련 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갖는 것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정원 스스로 불법행위를 저지른 직원들을 색출해 수사하도록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이재명 투명사회팀장도 "법적
제한과 통제장치를 갖추기 어려운 정보기관이 수사권을 보유하는 자체가
국민기본권에 대한 위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사권 폐지와 함께, 시민단체들은 정보기관을 아예 '국내담당'과
'국외담당'으로 분리해야한다고도 주장한다.
국정원 내에서는 특히 국정원장 후보로 내정된 고영구(高泳耉) 변호사가
전 민변회장이었다는 점에서 '고영구 원장' 체제가 시민단체가
제기하는 국정원 개혁 요구를 어디까지 수용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바라보고 있다.
세 번째 개혁 압력은 인적청산을 포함한 조직개편이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 직원들 사이에선 대선 때 한나라당에 줄섰던 사람들과, 전 정권에
줄 대서 벼락 출세한 사람들을 가려내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한다.
자연히 이런 국정원 개혁 방향을 둘러싼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우선 국정원의 수사권 배제에 대해서는 남북 대치라는 한국의 특수
상황을 고려할 때 수사권 없는 정보활동만으로는 간첩검거가 어렵다는
반론이 나오고 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북한학)는 "최근 간첩이나
국가안보사범의 특성이 국제화·광역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북한의
침투와 해외연계 간첩을 색출하기 위해서는 해외 정보망을 갖춘 기관이
대공 수사권을 행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도
재작년 9·11사태 이후 테러예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FBI와 CIA
간의 공조체제 구축을 절감하고 있다"고 말한다.
국정원에서 생산된 '중요 정보'의 보고 시스템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된다. 국정원장 출신의 한 인사는 "국정원장 1대1 보고를
없앰으로써 대통령만 알고 있어야 할 대외·북한·국정관련 정보가 늘
서면을 통해 누군가를 경유해 올라가는 것은 정보관리 차원에서 상당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안보정보를 NSC 정보관리실에서
모두 취합토록 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국정원에서 생산한 대북정보가
NSC 정보관리실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개연성도 없지않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국정원장과 정보 취합·보고를 책임진 국가안보보좌관 간의
파워게임을 걱정하는 이도 있다.
이미 '비공식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국정원 개혁구상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고영구 원장 후보가 어떤 카드를 꺼낼지 주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