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다 ..... 장옥관

문득 내가 그 산에 들어섰을 때

비릿한 물비린내 속 여름 굴참나무들

번쩍이는 은갈치를 달고 있었다

후득이며 떨어지는 빗방울

억수 속에서 산은 점점 물이 차올라

어머니의 바다

내 아가미로 들락거리던 깨꽃 같은 별똥별

자꾸 등줄기를 간질이던

불가사리, 해파리의 작은 움직임

꼬리지느러미 아래 초록의 비늘이 번뜩이고

둥근 봉분 속에 숨겨 놓은 비밀

오래 입 다문 비단조개가 제 몸을 연다

퇴적암 속 양치식물 움이 돋고

내 몸 속 어딘가에 숨어 있을 물고기 알

어린 치어들이 빗줄기를 거스른다

굴참나무 떫은 도토리 실하게 맺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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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목구어(緣木求魚)라고 했던가. 일이 이루어지기 불가능함을 비유한 이
말이 그러나 이 시에서는 천연덕스럽게 화자의 눈앞에 현실로 전개되고
있다. 비 내리는 산 속에서 펼쳐지는 이 풍경은 마치 꿈의 한 장면이
그러하듯 기이하면서 다채롭고 황당하면서 유혹적이다. 그런 점에서
'하늘 우물'(세계사)에 실린 장옥관의 시는 고대 중국의 기서인
'산해경'의 어떤 부분을 닮았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식물과 동물은
물리적 합법칙성을 따르지 않고 상상력의 자율성에 몸을 맡긴 채
자가증식한다.

나무는 잎사귀 대신 은갈치를 달고 있으며, 사람은 아가미로 숨쉬고,
오래된 지층 밑의 양치식물에 움이 돋는다. 무생물과 생물, 식물과
동물과 인간, 이들 사이엔 더 이상 경계도 서열도 자리하지 않는다.
존재는 자유롭게 유동하며 서로 몸을 바꾸고 부단히 변신하면서 환각을
창출한다.

이러한 시인의 환각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지점은 치어들이 빗줄기를
거슬러 오르고 굴참나무 열매가 실하게 맺히는 비옥한 풍요의 세계, 시의
표현을 빌리면 '어머니의 바다'이다. 비 내리는 산이 무한한 생산성을
자랑하는 우주적 자궁으로 탈바꿈할 때 모든 존재는 '번쩍이'고
'후득이'고 '번뜩이'는 발광체가 되며 사물은 '제 몸을 여'는
혼음의 축제에 빠져든다. 이 마술적 순간, 그 누군들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지 못할 것인가.

(남진우 / 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