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태국 방콕에 5박6일간 여행을 다녀온 회사원
김민정(여·27·서울 강남구 논현동)씨는 이달 초 신용카드 청구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 여행지에서 돌아온 후에도 방콕에서 세 차례나
보험사와 화장품 매장에서 50만원어치의 돈을 쓴 것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방콕에서 백화점과 호텔에서 카드로 결제한 것밖에
없는데 너무 황당했다"고 말했다. 카드사측은 "카드복제 범죄조직이
정보를 빼내 위조 카드를 만든 뒤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해외여행객들은 여행지에서 카드를 사용할 때 '내 카드가 혹시 불법
복제되는 건 아닐까'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해외여행객들의 카드 정보를
빼내 복제 카드를 만들어 사용하는 '나 몰래 카드 복제' 범죄가 활개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무대는 태국·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지역.
위조된 카드를 반년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다른 국가에서 사용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회사원 이모(40)씨는 최근 지난 1월 일본에서 사용됐다며 1400만원의
대금을 청구받았다. 이씨는 "카드 매출이 발생한 달엔 한국에
있었다"면서 "작년 12월 회사 출장차 일본에서 3일간 체류하며 카드를
한 번 쓰긴 했지만 분실하거나 양도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해외에서의 카드 위·변조로 인한 피해건수와 액수도 증가하고 있다.
K카드사의 경우 2001년 140건이던 피해건수는 지난해 200건으로 40%
가까이 늘었다. 피해액도 6억원에서 8억원으로 뛰었다. S카드사 역시
2002년 4분기 피해건수는 약 60건으로, 전년 동기보다 3배나 늘었다.
작년 피해액도 1년 전보다 3배나 늘어 3억원이나 됐다. 카드사들은
"카드 복제 피해건수가 해마다 30~40%씩 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카드사측이 피해 사실 확인이 어렵다며 보상을 미뤄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카드 범죄단의 복제 수법은 다양하다.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면세점이나 호텔 매장의 직원들과 결탁, 관광객 몰래 카드를 전문
복제기에 긁어 신상 정보를 복사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가맹점 몰래
카드 단말기에 작은 칩을 부착해 정보를 무더기로 빼내기도 한다.
한국 여행객들이 주요 타깃이 되는 이유는 국내에서 통용되는 마그네틱
카드의 위·변조가 쉽기 때문이다. 경찰청 지능1계 관계자는 "일본과
유럽 등 선진국들이 보안성이 뛰어난 IC칩 카드를 도입하면서, 복제하기
쉬운 마그네틱 카드를 쓰는 한국인들이 범죄의 집중 표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IC칩 카드는 사실상 소형 컴퓨터와 같아서 보안성과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최첨단 카드다. 이 때문에 경찰청은 작년 초
국내 5개 카드사에 IC칩 카드의 신속한 도입을 요청했지만, 카드사들은
엄청난 투자비용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비자코리아 정두진(32) 과장은 "해외여행시 카드 결제가 이뤄지는
현장을 끝까지 지켜보고 낯선 사람에게 카드를 맡기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