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공식 진상조사보고서
확정 문제를 놓고 담당 위원회가 심한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은
반 세기가 지난 이 사건의 역사적 실체를 재조명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민감한 사안인지를 보여준다. 보고서 채택을 위한
회의가 결론없이 잇달아 연기되고 사퇴 의사를 밝히는 위원까지
나올 정도다.

위원회에 상정된 보고서 초안에는 4·3사건 당시 국가 공권력이
부당하게 민간인을 살상한 데 대해 국가 책임이 인정되며, 따라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당시 미군이 진압작전을 지휘한 만큼 미국에도 책임이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보고서 초안에 대해 일부 위원들은 "사건의 원인보다는 군경의
과잉진압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거나 "사건의 정당성을
증명해내려는 피해 보고서로 여겨질 정도"라고 평가하고 있다.
대통령의 사과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이라는
시민단체의 주장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논란을 수렴해가는 과정에서 하나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위원회의 설치 근거인 4·3사건에 관한 특별법일 것이다.
3년 전에 제정된 이 법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아픈 상처 중 하나인 4·3사건의 억울한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지금이라도 충분한 명예회복 조치가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사건이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하기 위해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무장반란에서 기인했다는 역사적 진실도 결코 가려지거나 훼손돼서는
안 된다. 희생자의 범위는 가능한 한 폭넓게 인정하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다치지 않게 하는 조화로운 역사 인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