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숙 한국수양 부모협회장이 24일 오전 협회 사무실에서 이날 안양의 수양 부모에게 갈 형 제를 만나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a href=mailto:cjkim@chosun.com>/김창종기자 <


24일 낮 12시 서울 성북구 정릉2동 한국수양부모협회(회장
박영숙·朴英淑·48) 사무실. 박 회장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담배를
피우는 30대 남자에게 "잘 키울 것이니 걱정 말라"고 위로했다.
이혼으로 아들 둘을 더 이상 키울 수 없게 된 그가 지난 3월 초 협회에
"두 아들을 2년간 맡아 줄 수 있느냐"고 부탁했는데, 안양에서
수양부모를 하겠다는 부부가 나타나 오늘 아이 둘이 안양으로 가게 된
것. 아이들은 헤어짐이 슬펐지만 금방 "큰형네 집(안양)에 간다"며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박 회장은 지난 95년부터 고아나 버려진 아이들을 맡아 기르며 입양이나
수양(收養) 운동을 펼치다가 지난 98년 4월 한국수양부모협회를
창설했다. 지금까지 협회를 통해 수양부모를 만난 아이들은 모두
400여명.

우리나라에 아직 '수양부모법'은 제정되지 않았지만, 협회는
수양부모가 될 수 있는 우선순위를 엄격히 정했다. 우선 부부만이
수양부모가 될 수 있다. 부부 중 한 사람은 일터가 있어서 아침에
출근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이 낫다. 핏줄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수양하는 것만도 대단한데 왜 굳이 조건을 붙일까?

"노력하면서 사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부모 중 한
사람이 힘들게 돈 벌어 오면, 가사 노동을 하는 사람이 몇백 원짜리
콩나물값 아끼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아야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한다는
것이지요. 영국에서의 연구를 보면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복지에
의탁하는 사람(welfare people)'으로 성장하기 쉽다고 합니다."

그는 주한 호주대사관 문화공보실장(차관보급)이고, 남편은 명지대
교수이다. 그럼에도 10년째 빨간색 액센트를 타고 있고, 시가
8000만원짜리 연립주택에 산다. 협회 운영을 위해 목돈이 필요하자 지난
2000년 영국 대사관을 퇴직했다. 퇴직금 1억2000만원은 협회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그가 입양(수양) 운동을 펼치겠다고 다짐한 것은 1980년 유학생 시절.
한국 입양아가 국외로 나갈 때 데리고 가면 홀트복지재단에서 귀국
비행기표 한 장을 공짜로 주던 때였다.

"예닐곱 번 그 일을 했는데, 여덟 살짜리 아이가 양부모가 될 거구의
서양인을 보자마자 저에게 달려와 울더군요. '아줌마! 아줌마가
키워주세요.' 그렇게 두 시간을 같이 울었어요.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아이를 키우지 못할까 한스러웠어요." 그날 이후 나이 40세가
넘으면 아동문제에 자원봉사하겠다고 결심했고, 만 40세가 되던 1995년,
고아원 등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을 돌보게 됐다.

박 회장은 기자에게 친부모가 친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입양이 불가능한
국내법 문제, 고아원 문제 등에 대해 열변을 토했지만 뭔가 어두운
기색이었다. 사실 그는 23일 밤 10시쯤 지인(知人)과 협회에 도움을
주었던 이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지난 수년간 많은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협회 일로) 노력하는 데 지쳤습니다. 제
본연의 (호주)대사관 업무에만 전념하려 합니다."

지난 21일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가정위탁지원센터 운영체 선정을 위한
서울시 심의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보육지원과 관계자는 "박
회장이 누구보다 열성적이고 가정위탁사업을 열심히 해 왔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협회의 규모나 공신력, 기타 아동복지사업 등에서의 실적,
향후 운영 계획 등에서 협회가 다른 지원대상 후보에게 밀렸다"고
지적했다. 지원금은 연간 1억1000만원 정도다.

"지원금을 받고 못 받고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5년 동안
보건복지부의 유일한 전문 가정위탁기관으로서 한 일을 공인받지 못한
셈이니, 어느 (수양)부모가 앞으로 우리를 믿겠습니까? 자연 도태될지도
모르지요."

그는 "그렇지만 오늘 수양부모를 찾게 된 아이들과 울먹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어차피 이 일이 내 운명이구나 싶어진다"며 울컥하는
마음에 이메일에서 내비쳤던 사업중단 의사를 거둬들였다. 박 회장은
"이렇게라도 기자에게 내 심경을 털어놓고 나니 조금 후련해진다"며
싱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