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챔피언의 아들 매트 머독(벤 애플렉)은 어릴 적 실수로 방사능
폐기물을 뒤집어쓰는 바람에 시력을 잃는다. 대신 나머지 감각들은
초인적으로 발달한다. 성장해 변호사가 된 머독은 낮에는 법으로
약자들을 보호하고, 밤에는 주먹으로 죄인들을 심판한다. 밤에 쓰는
이름은 '데어데블'. 그는 아버지를 살해한 뉴욕의 범죄왕 킹핀(마이클
클락 던컨)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일렉트라(제니퍼 가너)와 사랑에
빠진다.
'데어데블'(Daredevil·21일 개봉)은 1964년 만화로 태어나 사랑받아온
캐릭터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 다른 영웅 캐릭터들과 달리
데어데블은 인간적이다. 그에게는 '불구'의 이미지가 포개져 있기
때문이다.
구도는 단순하다. 영화는 선악(善惡)을 분명하게 가르고 '결국 정의가
승리한다'고 말한다. 선악의 경계가 흐리고 정의가 종종 무릎을 꿇는
세상에서 만화적 상상력의 명쾌함은 흠이 아니다. 그러나 '데어데블'은
딱 그 정도일 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눈이 휘둥그레질 액션이나
영상은 박하고 캐릭터의 인간미도 시늉뿐이다. 다만 빗소리를 통해
연인의 얼굴을 보는 장면이나 교회에서 불스아이(콜린 패럴)와 벌이는
결투 장면은 잘 뽑아냈다.
가장 인상적인 연기는 벤 애플렉이 아니라 악역을 맡은 콜린 패럴에게서
나온다. 패럴은 '마이너리티 리포트' '리크루트'에 이어 강렬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밋밋하고 얕은 줄거리와 되풀이되는 우연, 기대에 못 미치는 액션에도
불구하고 '데어데블'이 실망을 주지 않는다면 바로 이것 때문일
것이다. 불구자가 초능력자가 될 수 있지만 그 초능력 때문에 불구가 될
수 있다는 잠언. 데어데블은 그래서 '겁없는 사람'으로만 읽히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