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부진과 공무국 직원들이 폐간호가 찍혀 돌아가는 윤전기를 붙들고
눈물을 흘려야 했다."
1940년 8월 10일, 다음날자의 폐간호를 편집할 당시 함상훈(咸尙勳)
조선일보 편집국장의 증언이다. 폐간 직전까지 조선일보에 소설
'삼국지'를 연재하고 있던 만해 한용운 선생은 폐간 직후 '붓이 꺾여
모든 것이 끝났다…'고 한탄하는 내용의 '신문이 폐간되다'라는
한시를 남겼다. 17일 독립기념관 이사회가 철거를 결정한 윤전기는 일제
암흑기의 강제 탄압으로 숨을 멈추었던 바로 그 윤전기다. 이제 60여년
만에 또 다시, 우리 손으로 지어진 독립기념관에서 뜯겨 나가는 두 번째
눈물을 흘리게 된 셈이다.
일제 때 조선일보를 인수한 방응모 사장은 일본
동경기계제작(東京機械製作)에서 들여온 이 윤전기를 1939년부터
가동했다. 당시로서는 신문지가 자동으로 접혀 나오는, 우리나라 신문
사상 최초의 아치 타입 초고속 초대형 윤전기였다.
그러나 일제는 1940년 조선일보를 강제 폐간하고 이 윤전기를
조선총독부가 발행하는 친일 신문인 매일신보로 넘겼다. 광복 3개월 후인
1945년 11월 23일, 자체 윤전기를 확보하지 못한 채 복간한 조선일보는
이곳 저곳 인쇄시설을 빌려 더부살이로 신문을 내는 어려움을 겪다가
이듬해 3월에야 일제에 빼앗겼던 윤전기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조선일보 윤전기에 담긴 역사를 안다면 철거 운운할 수 없습니다.
윤전기는 해방 전후의 파란만장했던 한국사가 새겨진 민족의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17일 정광헌(73) 전 조광인쇄 사장은 1958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85년
공무담당 이사로 퇴직할 때까지 자신이 정리한 이 윤전기의 역사를
밝혔다. 그는 "독립기념관에 전시된 윤전기는 조선일보 강제폐간 이후
6번에 걸쳐 뜯기고 옮겨지는 과정에서 일제와 6·25의 아픔, 광복의
영광을 모두 기록한 역사의 증인"이라고 말했다.
이 윤전기의 수난은 6·25 발발로 다시 시작된다. 1950년 6월 서울을
장악한 인민군은 조선일보 윤전기를 북으로 가져가기 위해 분해해
창경원으로 옮긴 것. 수원에 임시 회사를 차리고 평판인쇄로 전시판을
발행하던 조선일보는 9·28 수복으로 서울에 돌아왔다. 70t에 이르는
윤전기 부품은 3개월에 걸쳐 하나씩 조선일보로 옮겨졌으나 1·4후퇴
등을 겪으며 방치됐다가 1951년 말에야 간신히 조립을 끝내고 재가동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