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점심. 서울 마포구 생태찌개집. 김종해 (62)· 요일 (38)
부자(父子) 시인이 앉았다. 아버지는 70년대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창립
발기인이다. 상계동 집에서 어린 자식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중정
요원들에게 끌려간 경험이 있다. 큰아들도 대학 시위로 수감됐던 경험이
있다. 아버지는 '면회'라는 시를 남겼다.
"너는 나보다 더 해. 나도 앞서간 진보주의자인데, 너는 너무
급진적이야. 살아온 전통과 지혜를 디딤돌로 삼아야지. 진보를 위한
진보는 곤란하다."(父)
"저는 진보 아니에요. 회색주의자죠. 80년대 동년배들에게 부채의식도
있어요. 그런 친구들에 비하면 제가 되려 보수주의자인데 아버지는 나를
너무 급진, 좌경으로까지 말씀하시니…."(子)
"미군 문제만 해도 그래. 나는 촛불시위나 반미구호가 솔직히 불편하고
불안해. 너희는 왜 김정일 독재정권, 세습권력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거야?"(父)
“전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인데 일부러 언급할 필요는 없잖습니까.”
2남1녀를 둔 김종해 시인은 일요일 점심이면 손자들까지 전 가족을
모이게 한다. 물론 '한 잔'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정치 얘기만
나오면 목소리가 커진다. "견해를 달리하는 반대세력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 내가 노 대통령을 찍지는 않았지만 그가 잘하면 박수칠
거야."(父)
"노 대통령을 열광하고 지지했던 세력도 그가 잘못하면 제일 먼저 들고
일어설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가 말을 함부로 하는 과오는
있지만 옛날 정치인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기 때문에 기대를
갖습니다."(子)
“내가 너희를 기르면서 너무 자유롭게 놔둔 것 같아.”(父)
"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예요. 아버지가 저희에게 따뜻한 울타리가
된다는 것은 감사해요. 그러나 저도 곧 불혹이에요. 아이 취급 안
해주셨으면 해요."(子)
"무슨 말이냐. 나는 네가 어릴 때부터 어른 대접해 주었는데…. 너에겐
내 앞에서 담배 못 피우는 것 말고는 금기가 없잖니."(父)
술 실력이 보통을 훨씬 넘는 부자(父子)다. 스테인리스 주전자가 벌써 세
번째 들어온다. 그럼에도 대화에는 빈틈이 없다.
“내가 네 눈빛을 보고 있다. 네가 시를 계속 쓸 것인지….”(父)
“저는 할 말 없어요.”(子)
“왜 못 써?”(父)
“무섭습니다.”(子)
"시를 얼마나 썼다고 그런 말이냐? 30~40년을 써왔다면 혹 모를까 넌
젊은 나이잖아? 얼마든지 실험해 볼 수 있잖아?"(父)
"건방지게 들리실지 모르지만 한 편을 써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자신이 인정하는 시를 쓰고 싶어요."(子)
“네가 시를 안 쓴 지 벌써 5년 됐구나.”(父)
“쓰긴 쓰는데 자꾸 버리는 거죠.”(子)
“그러니까 내가 너를 ‘전(前) 시인’이라고 부르는 거다.”(父)
너무 했다 싶었는지 아버지가 아들을 조금 다독거린다.
"나도 진보 할 수 있다. 남이 말 못하는 걸 내가 말할 수도 있어. 나는
모난 돌이어서 너무 많이 정을 맞았다. 너도 정을 몇 번 맞았지?
독수리는 발톱을 숨길 줄도 알아야 해."(父)
"저는 아버지께 너무 많이 정을 맞아 지금은 모가 남아 있기나 한지
모르겠어요."(子)
"모가 아니라 나쁜 습관이야. 내가 왜 너를 낭떠러지로 몰겠니? 다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은 게지."(父)
"사실은 동생들과 어머니와 제가 공동 전선을 펴서 아버지께 대응하죠.
어머니가 '이중간첩'일 때도 있지만요."(子)
"어이구, 장남이 저렇게 말하다니…(웃음). 그 정도 공동 전선은 내
호흡에 다 무너진다."(父)
“지금 정세로 보면 미국과 같은 존재지요.”(子)
"미국이란 말, 함부로 쓰지 마라. 말 한마디도 과격해선 안 돼. 난
선량한 국민으로서 바라건대 북핵에 대해 정권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말
좀 해달라는 것일 뿐이야. 여중생 사건도 가슴아픈 일이다. 그러나
끝까지 물고 늘어져 양국 관계가 손상되는 지경으로 가면 안 된다."(父)
정치 이야기로 되돌아갈 기미는 도중에 말허리를 끊어주어야 한다.
아들에게 어떻게 시인이 됐느냐고 물었다.
"자연스러웠지요. 특별히 결심한 적은 없지만 언젠가 시인이 될 거라는
것을 의심해 본 적도 없어요. 아버지 서가에 꽂혀 있던 많은 책들이 알게
모르게 자양분이 됐지요."(子)
"나는 처음에 네가 시인 되는 것을 반대했다. 다른 분야를 개척해서
장인이 돼주길 바랐지. 그러나 이왕 시인이 됐으면, 나를 닮는 것은
섬뜩하게 싫다. 네 것을 이룩해야지. 너의 길이 따로 있는 거다."(父)
아버지는 두 아들을 데리고 출판사를 운영하며 시 전문 잡지
'시인세계'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