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웠어요. 중앙아시아 황무지를 떠도는 고려인들의 비극(悲劇)을
유대인 대학살만큼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견딜 수가 없었죠."
김소영(35) 감독은 고려인들을 '역사 밖으로 떨어져나간 파편들'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이들을 35㎜ 다큐멘터리 영화에 담았다.
'하늘색 고향'. 개봉관을 얻지 못해 4년 동안 고려인들처럼 유랑하던
영화는 21일부터 나흘간 광화문 아트큐브에 짐을 푼다.
다큐답게 '하늘색…'은 고려인들의 아픈 기억을 불러낸다. 그러나
내레이션도 수사학도 없다. 그들의 말을 고스란히 들려주는 형식이다.
다큐의 주인공인 신순남(76) 화백이 그린 대형 벽화 '레퀴엠'(44x3m)도
말없이 그 참극을 재현한다. 그림 속 인물들은 얼굴이 없거나 있어도
슬픈 표정이다.
"노예는 얼굴이 없잖아요. 1937년 고려인들이 영문도 모르고 탔던
열차도 가축 수송열차였습니다."
감독은 그 상황을 '느린 파시즘'이라고 부른다. 일본 스파이라는 누명,
죄없이 끌려가는 사람들, 열차가 잠시 멈추면 눈속에 파묻히는 시체들,
무덤 쓸 땅 한 평 없는 황무지…. "고려인들은 협동농장에서 맥없이
늙어갔고 우리말도 잊혀져 '산 송장'이나 마찬가지였어요."
'하늘색…'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시작됐다. 1997년 1월
조선일보 신년특집으로 실린 신순남 화백 기사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든 김
감독은 곧장 자료수집에 나섰고, 그해 9월 우즈베키스탄으로 들어가
이듬해 4월까지 '1937년 강제이주'를 겪은 수백명의 고려인들을
만났다.
"6㎜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프리인터뷰를 했어요. 노인들이라 말도
중언부언이고 이왕이면 강렬한 사연을 뽑아내야 하니까요. 서로 안면을
트고 밤에 숙소로 돌아와 모니터를 하면서 속얘기가 더 나올 법한
노인들을 가려냈습니다."
600만원이 든 통장과 여기저기서 기부받은 돈으로 제작엔 4년이 걸렸다.
나레이션 없이 인터뷰와 영상, 음악만으로 꾸민 '하늘색…'은 2000년
서울국제다큐멘터리영상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거푸 대상을 받았다.
상황을 거울처럼 비추는 형식이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개봉을 못한 게 늘 짐이 됐어요. '왜 비주류 영화를
했을까' 후회한 적도 있지만, 우리 사회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큐가 없다는 건 문화적 다양성 측면에서 부끄러운 일 아닌가요?"
김 감독은 '하늘색…'을 들고 2001년 우즈베키스탄을 다시 찾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고려인 20여명 중 5명은 이미 사망한 뒤였다. 살아남은
어르신들만이 눈시울을 붉히며 '당신들의 영화'를 지켜봤다. 감독은
영화관을 나오던 할머니가 덥석 손을 붙잡고 해준 말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고븐(고운) 새아가(처녀) 고맙수. 남의 나라 땅에서 우리들
끼노(영화)는 처음 봤어. 빨리 국시(국수) 먹으러 가자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