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만의 만남. 지난 11일 논산에 있는 육군훈련소를 22년만에 다시 찾아봤다. 논산훈련소는 매년 입대하는 육군 신병(新兵)의 약 절반을 훈련시키는 곳이다. 대한민국 남자들이 거쳐간 곳 중 이곳보다 더 보편적인 곳이 있을까. 훈련소가 1951년에 생겼으니 어림잡아 최소한 수백만명의 남성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그사이 훈련소는 어떻게 변했을까. 병무청에 요청해서 병적기록표를 뒤져봤다. 입대일 81년 7월, 군번 1318****. 하지만 요즘 군번은 입대연도를 따라 03-으로 시작해서 8자리 숫자가 따라붙은 식으로 바뀌었다. 입대당시 57㎏이던 체중은 10㎏이 늘어났다. 대학교 3학년까지 받은 교련으로 6개월 복무단축혜택을 보았고, 복무기간이 33개월에서 30개월로 줄어들면서 모두 9개월이 단축돼 기자는 2년만에 제대를 했다. 덕분에 병장재위기간은 딱 18일이다.
요즘은 군복무기간이 26개월이다. 81년 4주였던 훈련기간은 6주로 조정됐다.
수년전 조적식 벽돌건물로 새로 지은 30연대 건물로 향했다. 3층으로 된 붉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가족처럼 내집처럼’ ‘남에게 관대 나에게 엄격’같은 구호가 눈에 띄었다. 내무반은 예전보다 작아져 한방에 14명 안팎이 쓴다. 병사들 키가 커짐에 따라 마루바닥은 더 깊어지고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관물대. 나무에서 철제로 바뀐 관물대는 칸막이가 많아져 정리정돈이 용이해보였다.
90년대 들어 새로 지었다는 연무대교회는 규모가 엄청났다. 일요일마다 3번씩 열리는 예배에 참석하는 인원은 7000여명 정도. 2주일에 한번씩 세례식도 갖는다.
연무대교회는 기자가 세례를 받은 곳이기도 하지만, 훈련 도중 이곳에서 쓴 ‘소원수리’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는 곳이다. 당시 대령이던 군목에게 제출한 종이에 ‘아직도 훈련중 조교들이 훈련병들을 구타한다’고 썼다가 내무반이 발칵 뒤집힌 기억이 새로웠다.
훈련소의 오치군소령은 “요즘은 훈련소를 떠나기 전에 소원수리를 하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욕설이 있었다는 불평이 나오면 감찰반에서 사실확인을 거쳐 담당 조교에게 경고조치한다”고 말했다.
정훈관계자들은 “과거에는 훈련병들의 육체적인 능력이 뛰어났지만, 요즘은 자존감이 높아진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제도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자존감이 높아진 것이 더 낫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왜 훈련을 하는지 스스로 생각하며 행동에 옮기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훈련병들은 오후 5시30분부터 식당으로 줄서서 모여들었다. 플라스틱 식기는 스텐레스로 바뀌어 있었다. 취사장에서는 12명의 기간병들이 큰 삽으로 쌀을 씻는 모습도 보였다. 하루 소비량은 40㎏짜리 쌀 45가마 정도. 이 인원으로 수천명의 식사를 해결하느라 시간절약하는 방안을 많이 고안했다. 달걀 한 판을 단번에 깨는 기술은 특허를 내 제과점에 이전하기도 했다. 양파를 깔 때도 일일이 손으로 하는 대신 에어 컴프레서로 쐬어 단번에 벗기고, 두부 자를 시간도 아끼려 식칼 10개를 일렬로 조립해 +자 형으로 그어 해치운다.
86년부터 훈련소에 근무한 이명희상사는 “야외훈련 나가면 반합에 위생 비닐봉투를 넣어 음식을 담아 먹은 뒤 비닐만 수거해서 아예 음식찌꺼기를 만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훈련시설중에는 영상사격훈련시스템이 특이했다. 20평 정도 되는 암실에서 스크린에 떠오르는 사격목표를 향해 소총을 발사하는 시물레이션 시스템이다. 영점사격은 물론, 실거리사격 등을 실감나게 체험하도록 했다. 이 장치는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하는 순간, 총구가 어떤 궤적을 그리면서 이동했는지, 방아쇠를 당긴 이후 몇초만에 격발이 됐는지도 보여준다. 이 궤적과 시간을 보면, 호흡불량이나 급격발 등을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시설이 협소해 신병들이 체험하기는 어렵다.
군관계자는 “이 시설을 늘리면 신병들이 더욱 효과적으로 배울 것이며, 사격장 때문에 제기되는 민원도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훈련소에서 가장 큰 절제는 아마 금연일 듯 싶다. 사회에 있을 때 흡연율은 평균 67%에 달하지만, 95년부터 훈련병에게는 금연령이 떨어졌다. 국방일보를 제외하고는 신문과 텔리비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