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광양시 다압면에 있는 섬진강 매화마을을 한 번 다녀온 방문객들은
연한 홍색이 돌고 향기가 강한 매화의 향연에서 환성을 지르며 이런 상상을
할 것이다. '사랑스러운 나의 여인! 나의 모습!'매화를 가장 먼저 피는
꽃으로 여긴 옛 선비들은 봄이 오면 말을 타고 탐매(探梅)에 나섰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서 기품 있는 여성을 바라보는 것처럼 한참 동안
감상하고 매향에 취해 시(詩)를 짓고 잔을 기울였다고 한다.

매화의 고자(古字)는'某'인데'梅'의 본자이다. '용비어천가'를
주석하고 조선 지도를 만드는 데 참여한 조선 초기 문신 강희안(姜希顔)은
'양화소록(養花小錄)'의 화목 9등 품론에서 매화를 1품으로 분류했다.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꽃을 피워 봄을 가장 먼저 알려줌으로써 불의
에 굴하지 않는 선비 정신의 표상으로 삼았다. 또 사랑을 상징하는
꽃 중에서 으뜸으로 한국적 여인상을 표현하는 시나 그림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한다.

올해의 봄 패션 유행은 활짝 핀 매화의 이미지가 두각을 나타낼 것이다.
벌써 패션업계에서는 고전적인 여인상을 현대적인 이미지로 재해석해
'매화상'을 연출하려는 다양한 아이디어 경쟁을 펼치고 있다.

패션 유행은 세상 사람들이 살아 가는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고 있다.
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미래 우리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패션 유행을 만드는 유행 전문가도 사람이 살아 가는 모습을 분석해
유행을 예견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제2의 피부'인 의복을
착용함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한 지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즉 세상이 변하고 그 변하는 사회 속에서 동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의복을 착용하고 이러한 과정이 빈번할 때 우리는 유행이라고 한다.
패션 유행은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경향이 있다.

한 번 나타난 현상이 미래에 또다시 나타나곤 한다. 유행의 주기가
빠르고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 여성 패션이다. 지난 수년 동안
여성의 패션 경향은 강한 여성, 당찬 여성을 나타내는 유니폼 디자인과
검정색, 붉은색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반면 남성 패션은 여성으로부터 보호받는 꽃미남 이미지였다.
고대부터 혼돈의 세상이 오면 여성상이 부각되었다. 원시 유목시대는
모계사회였고, 16세기 영국의 혼탁한 왕위 쟁탈전을 종결하고 절대왕정
을 세운 것도 엘리자베스 1세, 영화'위대한 갯츠비'의 당찬 여주인공
데이지도 1차대전을 거쳤다.

이 여성들은 혼돈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존을 위한 전쟁을
치렀던 것이다. 10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20세기 말에 도래한
혼돈의 시대에도 여성은'여성 상위', '여성의 힘'을 외치면서
세상을 향해 돌진했다. 이러한 모습을 패션 전문가들이 포착해
유행으로 만든 결과가 '검정색 유니폼'이다. 의복으로 내면의 자아를
표현하고 자신을 위장하는'이상적 자아론(ideal self theory)'에
접근한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부터 유행하는 '매화 같은 여성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랑스러운 여성, 여린 여성, 보호받고 싶은
여성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투쟁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싶은
세기 말의 여성이 이제는 사랑과 매화의 그윽함을 가지려는 것이다.

연한 홍색을 띠는 얇은 옷감 속에서는 여성임을 표현하는 뽀얀 흰 살이
그윽한 향기를 뿜어낼 것이다. 움직일 때마다 찰랑거리며 소리내는
옷과 장신구들은 바람에 흩날리는 매화의 무리와 같이 여겨질 것이다.

세상의 형상과 조화를 이루는 여성들은 이제야 자신이 세상을
정복했다고 여길 것이다. '위대한 갯츠비'의 데이지는 여자의 이미
지로 갯츠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생은 세상과의 조화에서만
이겨나갈 수 있다. 조화는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강하게 발휘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에 4명의 여성 장관이 탄생했다.

대기업에도 여성 임원들이 많이 발탁되고 있다. 가정주부의 역할도 중요해지
고 있다. 이들은 매화 같은 여성상을 통해 주변과 조화의 미덕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올 봄 패션계가 제시한 유행요법인'매화 같은 여성상'
은 미래에도 칭송될 것이다.

(李裕順 삼성패션연구소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