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경주지역 문화재 보호 관계로 대수술을 치렀던 경부고속철도 노선 문제가 또 다시 극심한 홍역을 앓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7일 청와대 수석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정무수석으로부터 “양산 천성산과 부산 금정산의 고속철도 터널 관통 문제로 지율스님(천성산 내원사)이 31일째 단식 농성 중”이라는 보고를 받고 “공사가 늦어지더라도 상황을 파악하고 결론내는 것이 좋으니 일체의 공사를 중단하고 쌍방 전문가가 참여하는 재검토위원회를 구성해 협상을 다시 하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대선 유세 때 이 구간 터널공사에 대한 재검토와 백지화를 불교계에 약속했었고, 이후 인수위도 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 천성산·금정산 구간은 내년 4월 개통 예정인 고속철 1단계 구간(서울~대전~대구)에 이어 오는 2008년 추가 완공될 2단계 구간(대구~경주~부산)의 일부이다.
◆ 엇갈리는 반응 =‘고속철도 관통반대 시민종교 대책위’는 일단 환영하고 있다. 단식 중인 지율스님은 “대통령이 우리 주장에 관심을 보인 점은 다행”이라면서도 “재검토 지시가 기존 노선의 부분적 수정을 말하는지, 전면적인 노선 변경을 뜻하는지는 좀 더 두고 볼 문제”라고 말했다. 부산지역 불교·환경계는 노선 자체의 전면 우회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부산시와 ‘부산경제가꾸기시민연대’ 등 일부 시민·경제단체의 반응은 다소 다르다. 결과보다는 ‘조속한 해결’에 무게를 두는 편이다. 부산시 오거돈 행정부시장은 “난항을 겪어온 협의회 발족이 돌파구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부산경제가꾸기시민연대 박인호 상임대표는 “조속히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환경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고속철을 조기 개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왜 반대하나 =불교·환경계는 “금정산·천성산은 양산단층과 동래단층 사이에 낀 취약지역이어서 굴착 자체가 위험하다”며 “게다가 12~13㎞에 이르는 장대터널을 뚫으면 수맥이 끊기거나 유출돼 심각한 생태계 파괴와 온천수 고갈로 이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천성산의 경우 22개의 희귀한 산지늪과 13개의 계곡 전체가 위협받게 된다는 것. 금정산도 부근에 고가(高架)가 지나면서 범어사의 수행(修行)환경이 침해받고, 터널 때문에 동래온천의 수원도 고갈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 터널 안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대구지하철과 같은 참사로 연결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대책위측은 “백지화가 대통령 공약 사항이고, 아직은 착공 전이니 대체 노선을 정할 시간은 충분한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 곤혹스런 정부 =건설교통부는 청와대의 재검토위원회 구성 지시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상당 기간의 사전조사와 적법 절차를 거쳐 결정한 노선이고, 현실적으로도 선택 가능한 최적안이라는 판단에서다.
건교부 고속철도건설기획단측은 “노선을 경부고속도로나 7번 국도 방향으로 바꾸면 기존 시가지 및 아파트 밀집지역 통과에 따른 새로운 집단 민원과 건설비 증가, 산기슭의 대대적 절개로 인한 환경·경관 파괴 등 훨씬 많은 난관과 부작용이 뒤따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완공이 최소 2~3년 지연돼 거의 최악인 부산·경남권의 물류비 부담이 다시 막대하게 늘어난다는 주장이다. 고속철의 반쪽 개통으로 귀결된 ‘경주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