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송성문씨의 소장 문화재 기증식.송씨의 장남 철(왼쪽 두 번째)씨가 대신 참석했다.


중·고생 필독 영어 참고서인 '성문 종합영어'의 저자 송성문
(宋成文·72)씨가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국보 4건과 보물 22 점 등 귀중
문화재 27점을 아무 조건 없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상 최대의 문화재 기증이다.

송씨는 6일 장남 철(哲·44)씨를 국립중앙박물관에 보내
대보적경(大寶積經·국보 246호)과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보물 1081호)
등의 문화재 기증 절차를 마쳤다. 수험생 초베스트셀러 참고서의 저자인
송씨가 국내에서 손꼽히는 문화재 수장가란 사실은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1961년 동아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송씨는
마산고등학교와 경북학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한 뒤 1976년부터
성문출판사를 경영, 영어학습서 출판 분야의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
그가 쓴 '성문종합영어'(1967) '성문핵심영어'(1968)
'성문기본영어'(1977) 등의 참고서는 홍성대씨의 '수학의 정석'과
함께 참고서의 '양대 산맥'과도 같아, 1년에 30만부 이상 팔렸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문화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1960년대. 당시만 해도
고(古)서적이 제대로 취급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 여기에 주로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귀중한 고인쇄 자료가 민가의 초배지로 발라지는
현실을 참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고서적 전문가인
전문(田文·75)씨의 도움을 받아 전국을 뒤지고 다녔다. 인사동과
장안평은 구두가 닳을 정도로 돌아다녔다. 특히 인쇄문화에 관련된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모았고, 80년대에는 한 점에 거의 집 한채 값을
들여 사들이기도 했다고 한다. 가족들은 "영어책을 팔아 번 돈을 거의
쏟아부었다"며 "지금도 버스만 타고 다닐 정도로 검소하게
생활한다"고 말했다.

1999년 출판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송씨는 늘 "소장 문화재를 나라에
기증하는 게 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고, 새 용산박물관의 개관을
앞두고 그 뜻을 이루게 됐다. '언젠간 좋은 곳에 시집을 보내야지'라고
생각하고 침대 옆 뒤주 속에 넣어뒀던 자료들을 모두 꺼냈다. 그러나
자신은 기증식에 참석하지 않고 둘째아들 집이 있는 미국(워싱턴 DC)으로
출국했다. 대신 기증식에 참석한 장남 철씨는 "아버님께서 언론의
주목이 부담스러워 일부러 자리를 피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기증한 문화재는 목판본 불경 등 고인쇄자료 20건과 사경(寫經) 3건,
세종대왕 왕지(王旨) 1건(1425), 한석봉 서첩(書帖) 1건(1594), 조선
숙종대 기해기사계첩(己亥耆社契帖) 1건(1719), 운보 김기창 화백의
'동해일출도(東海日出圖) 1건이다. 특히 고인쇄자료에 대해
지건길(池健吉) 국립박물관장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이르는
고인쇄사(古印刷史)에 획을 그을 수 있는 자료들"이라고 평가했다.

이중 국보 271호인 초조본현양성교론(初雕本顯揚聖敎論·271호)은 1992년
국보 지정 당시 전문가들이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대장경'이라며 흥분했던 자료다. 이 자료는 이번에 기증한 다른 3건의
국보와 함께 국내에 그 존재조차 확인되지 않았던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으로, 고려 현종대(1011~1031)에 불력(佛力)으로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판각한 세계 두 번째의 한역(漢譯)
대장경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가지정문화재는 모두 146건(국보
61건, 보물 81건). 이번 기증으로 소장 지정문화재의 18%에 해당하는
수량이 늘어난 셈이다. 박물관측은 오는 10월 '혜전 송성문 선생
기증문화재 특별전'을 열어 이 자료들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