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막 혼인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온 참이었다. 신부는
기진맥진해서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있었다. 신랑은 창턱에 올라서서
균형을 잡고 있었다. 그는 한 손엔 술병을 들고 다른 손으론 동전을 한
움큼 쥐고, 창 밑으로 뿌려대고 있었다. 그 아래 광장에는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돌바닥에 부딪치는 동전들이 내는 음악 같은 소리를 들으며
신부의 의식은 잠 속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신랑은 창턱에 있지 않았다. 그녀가 볼 수 있는 것은 단지 눈부시고 텅
빈 사각형의 빛이었다….

캐롤 쉴즈의 소설 '스톤 다이어리' 속의 죽음은 이렇게 황당하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도 죽음은 언제나 뜻밖일 수밖에 없다. 이세상에
'준비된' 죽음이란 없다는 걸 육친을 여의면서 알게 되었다. 의식의
끈을 놓고 혼이 나왔다 들어갔다를 한 달 이상 반복해서 모두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지만, 할머니 역시 어느 날 예기치 못하게
돌아가셨고 식구들은 우왕좌왕 허둥지둥하면서 작별의식을 치러야
했었다.

새 정부 출범의 부산함 속에서 사람들은 잠시 망각의 도움을 받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차갑게 불타는 고통'에 시달리는 대구의 유족들에겐
아직 그 무엇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정부는 늘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약속을 하지만, 지금 우리는 죽음의 질을 생각한다. 죽음도
삶의 일부분이기에. 그리고 대구에서의 어이없는 죽음과 함께 우리
모두의 일부분이 죽었음을 인정하기에.

(김경옥·라디오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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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는 이혜성(한국청소년상담원 원장) 장혜련(조선일보 2003년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자) 장광열(무용평론가) 이달희(시인·갤러리서종
대표) 김경옥씨가 교대로 집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