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중퇴자이지만 실습하는 미대생들 어깨 너머로 배워 대상을
타냈습니다."
고무영 (高武永·46)씨는 18년째 홍익대에서 학생들의 목공예 실습을
관리하고 있는 실험기사다. 나무로 가득찬 80평짜리 실습실에서
학생들에게 작품 제작 때 필요한 기계 사용법을 가르친다.
고씨는 지난해 11월 일본서 열린 '이타미 국제공예전'에서
'합창' 이라는 제목의 나무 술상을 출품해 최고상인 대상을 받았다. 이
대회서 한국인이 대상을 받기는 처음. 2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이
공예전은 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참가하는 27년 전통의 국제공예전이다.
국제적으로 지명도가 높아 매회 2000점이 넘는 작품들이 출품된다.
홍대는 지난 18일부터 고씨의 이 작품을 교내 문헌관 1층 로비에
전시했다. 학생이 아닌 교직원의 작품이 교내에 전시되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57년 경상북도 고령의 한 농가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업의 꿈을 접었다. 집안 생계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미술공부를 하고 싶다는 어릴 때부터의 꿈을 버리진 못했다.
75년 상경해 정수직업훈련원 목공예과에서 제작기술을 배웠다. 졸업 후엔
서울의 작은 공예품 생산공장에 취직해 월급 2만원을 받으며 일을 했다.
한 달 생활비로는 충분했지만 작품 재료비와 책값까지 쓰기엔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생각다 못해 두 군데 직장을 밤낮으로 다니며 돈을
벌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짬짬이 작품을 만들다 보니 손을 다치긴
부지기수. 오른손 새끼 손가락엔 1㎝ 길이의 흉터가 남았다.
85년 홍대 실습실 실험기사로 취직한 그는 단순한 기능공이 아니라 순수
공예가로서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실습실에서 학생들의 작품 제작을
도와주면서 감각을 익혔다. 목공예 제품은 무엇보다도 재료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하루에 통나무를 5~6개씩 잘라보기도 했다. 작품 한 점을
완성하기 위해 스티로폼 재료를 수십 차례 자르고 다듬는 연습도 했다.
손에는 항상 상처를 달고 살았다. 조각칼을 쥐고 오래 작업을 하다 보니
오른손에 박힌 굳은살은 사라질 줄 몰랐다.
주말마다 학교에 나와 종일 작품을 만드는 고씨를 보고 주위에선
실험기사가 순수 공예품을 만든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시선은, 높기만 했던 '학력의 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정규대학을 나오지 못하면 정상에 설 수 없다는 사회의 통념을 깨고
싶었습니다. 국내 공모전에 꼬박꼬박 작품을 출품했지만 생각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어요. 인맥·학맥이 좌우하는 국내 풍토는 좌절감만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래서 국제 공모전에 승부수를 띄웠던 것입니다."
어려운 현실에 굴하지 않고 도전해 좋은 결과를 얻은 고씨는 당분간
실습실 실험기사로 계속 근무할 생각이다. "독창적인 작품들로 가득찬
개인전도 열고 싶습니다." 그의 야심찬 청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