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 출범이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직은 늘 '낙하산 인사'로 시끄러웠다. 총재 승인을 문화관광부에서 한다는 구실로 청와대에서 '봐주기 인사(人士)'를 내려보냈기 때문.

국방부장관 출신의 서종철 총재는 1,2대 총 6년을 무난하게 지켜냈다. 국회의원이던 3대 이웅희 총재는 4대 임기를 1년여 앞두고 사퇴하면서 이후 인사는 갈짓자 걸음.

전 국방부장관인 이상훈씨는 2년 5월 5대 총재에 취임하나 좋지 않은 일로 1년 1개월여만에 사직했다.

6대 오 명 총재는 취임한뒤 25일만에 교통부장관으로 입각, 최단명 기록을 남겼다. 7대 권영해 총재도 안기부장(현 국정원장) 임명을 받아 9개월만에 관뒀다. 8대 김기춘 총재는 국회의원에 당선돼 1년 4개월만에 KBO를 떠났다.

재무부장관을 지낸 홍재형 총재는 9대에 이어 10대 총재에 취임하나 정권이 바뀌자 1년 1개월만에 자진사퇴했다.

11대 정대철 총재는 안 좋은 일로 4개월만 재직했다. 이처럼 총재 자리가 갈팡질팡해지자 드디어 구단들이 외압 배격을 선언하게 됐고 98년 12월 OB(현 두산) 구단주이던 박용오 두산 회장을 추대, '민선 총재시대'를 활짝 열었다.

12, 13대를 지낸 박용오 총재는 지난 18일 KBO 이사회에서 14대 총재로 추천돼 2006년 3월까지 임기를 모두 마칠 경우 7년 4개월이라는 역대 최장수의 기록을 남긴다.

하지만 '장기집권 총수'를 바라보는 일부 프로야구인들의 시선은 따갑다. 야구 인기가 떨어지며 관중은 급격히 줄어 지난 4년간 치적인 타이틀 스폰서십(3년간 100억원), SK-기아 창단, 프로-아마 행정 통합 등의 빛이 바래는 것.

KBO와 구단은 연간 77억원에 달하는 TV중계권료 수입도 자랑하지만 이는 '빛좋은 개살구'다. KBO 재정엔 엄청난 도움을 주긴 하지만 연간 20경기도 중계하지 않는 실정은 관중수 증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재정이 좋아졌다고 초중고팀이 늘지도 않았다. 80년대 한때 5만명에 달하던 구단별 어린이회원은 요즘 겨우 5000명 수준이다.

관중 동원과 저변확대의 핵심은 10년전처럼 매주 2~3경기를 중계케해 복잡한 룰과 스타들의 활약상을 생생히 팬들에게 알리는 것. 가뭄에 콩나듯이 중계하다가는, 경기규칙을 잘몰라 외면당하는 미식축구꼴이 언젠가 되지 않을까 저으기 걱정이다.

< 스포츠조선 김수인 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