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옹 도뇌르는 1802년 나폴레옹이 만든 프랑스 최고 국가훈장이다.
나폴레옹은 대포로 유럽을 점령하고 레지옹 도뇌르로 국내 정치를
관리했다. "군인은 한 조각의 하잘 것 없는 리본 장식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전투에 나선다." 나폴레옹이 자신이 만든 훈장을 두고 한 얘기다.
'훈장 정치'에 능했던 그는 작은 장식에 불과한 훈장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음을 간파했다.

얼마 전 정부가 차관급 이상 고위직을 지낸 150여명에게 훈장을
수여하면서 이를 비공개로 처리해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정부는
수훈자들의 명단도 공개하지 않았다. 수여식을 따로 마련하지도 않았다.
실무자들 설명으로는 "대통령의 일정을 조정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는데,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신우재씨가 최근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로 그 속사정의 일단을 짐작해볼 수 있게 됐다.

신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홈페이지(www.from60.com)의 '귀진재(歸眞齋)
통신'란에 실은 글에서 "이달 초 황조근정훈장을 택배로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작년 12월 초에 청와대로부터 "5년 전 유보됐던 훈장을 주려고
하는데 받겠느냐"는 연락을 받고 고민 끝에 그러마고 했었다는 것이다.
그는 5년이나 연착해 도착한 훈장을 받고 나서 "과민성 탓인지
우울했다"고 적었다.

5년 전 김영삼 정부 말기에도 물러나는 공직자들에게 훈장을 수여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때 김대중 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측에서 "경제
위기를 초래한 사람들이 훈장을 받는 것은 적당치 않다"고 제동을 걸어
무산됐다. 그 당시 훈장을 못 받은 사람 중에 30여명이 이번에 신씨처럼
뒤늦게 서훈 대상자에 포함됐다는 게 행정자치부의 설명이다. 정부가
수훈자 명단을 대외비로 한 것은 아마도 그 같은 '5년 전 사연'이
마음에 걸렸지 않았나 싶다.

나폴레옹처럼 독재자들은 훈장을 즐겨 써먹었다. 스탈린 시대의 소련에는
훈장이 무려 30종을 넘었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도 철십자 훈장으로
자신의 야망을 실현할 제국 군대에 용맹을 불어넣으려 했다. 훈장이 갖는
신비스러운 힘 때문이다. 그러나 '나눠먹기식' 또는 '선심용'
훈장으론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없다. 그래서 국가가 주겠다는 훈장을
안 받겠다는 사람까지 우리 사회에선 나온다.

(韓三熙 논설위원 shh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