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참사현장이 보존되기는커녕 성급한 복구와 일반 개방으로
훼손됐다는 소식은 참으로 어이가 없다. 사고대책본부는 참사 당일
저녁에 두 열차를 차량기지로 견인했고, 이튿날부터 수백명을 동원해
중앙로역 승강장 일대의 잔해를 마대에 담아 옮겼다. 이 과정에서
소방호스로 대대적인 물청소까지 했다고 한다.

모든 사건-사고 처리에서 현장통제와 보존은 기본이다. 이는 소소한
차량 접촉사고에서도 유념할 상식이니, 대규모 인명을 앗아간
재난현장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희생자 신원은 물론 사고원인과
진상, 문제점 등을 현장 이상으로 말해 주는 게 없기 때문이다.

대책본부측은 시신을 수습하고 유류품을 분석하기엔 현장이 어둡고
좁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장을 치우고 물청소까지 한 것은 '무지'를
넘어 '증거인멸'이라는 눈총을 사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한술 더 떠
대책본부는 주말인 22일엔 현장을 일반시민에게 개방하다가 유족 항의를
받고서야 중단했다니 황당할 따름이다.

DNA 검사도 어려울 만큼 희생자 시신상태가 나빠 유류품이 중요한
신원감식 수단이 된 마당이라 현장보존은 더욱 아쉽다. 보다 못한 유족과
시민단체들이 중앙로역에 대한 증거보전 신청을 법원에 내기로 했다고
한다. 이러고도 '책임있는 당국'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24일에야 경찰의 현장감식이 실시된다지만 일부 복구작업까지 진행된
현장에서 뭘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사고 수습의 궁극 목표는 비슷한 참극의 재발방지라는 점에서 현장 상황의
면밀한 분석은 중요하다. 행여 감식이 여의치 않아 희생자 신원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경우 희생자를 또 한번 죽이는 일이며
가족에겐 더 큰 비극이 된다. 기관사와 사령실을 비롯한 직원들의 석연찮은
사고당시 행적을 밝히는 것까지 포함해 보다 엄정한 사후대책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