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가 가장 잘 해내는 종목이 꼭 블럭버스터인 것만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는 솜씨야말로
할리우드가 비교우위를 지닌 또 하나의 분야이다. 할리우드는 오랜
세월에 걸쳐 소재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장르를 발전시키면서 자연스럽고
효과적으로 스토리를 풀어가는 방법을 터득해왔다. '엠퍼러스
클럽'(The emperor's club·3월7일 개봉)은 할리우드의 그런 노련한
이야기 솜씨가 빛을 발하는 가작이다.
세인트 베네딕트 고교에서 봉직하는 교사 헌더트(케빈 클라인)는
상원의원 아들인 세지윅(에밀 허쉬)이 전학와서 학습 분위기를 흐리자
속을 끓인다. 로마사(史)에 대한 지식을 겨루는 '시저 대회'에
세지윅이 뒤늦게 열정을 쏟자 헌더트는 그를 특별 지도한다. 3위까지
결선에 올라가 겨루는 이 대회 예선 필답시험에서 세지윅이 4등을 하자,
헌더트는 고민 끝에 그의 성적을 위조해 3위로 최종 결선에 진출시킨다.
작품 중반까지 좀 뻔한 듯 진행되는 이 영화는 '죽은 시인의 사회'
같은 작품의 아류로 보인다. 명문 사립고가 있고, 고전으로 교육하는
진정한 스승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국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는 그
시저 대회가 25년만에 다시 열리는 후반으로 치달으면서 다른 '학교
영화'와 차별화한다. 교육자의 무력증과 자긍심을 호소력 있는 화술로
동시에 담아낸 '엠퍼러스 클럽'은 결국 낮고 굵은 목소리로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맛깔스런 로맨틱 코미디 '어느 멋진 날'을 만들었던 감독 마이클
호프먼은 로마사에 대한 퀴즈 행사라는 '하품 나오는 소재'를
흥미진진하게 다뤄낸 끝에, 사려 깊은 결말로 관객 가슴에 선명한 파장을
만들어낸다. 메시지를 강조하되 따분하지 않은 드라마를 만나는 것은
정말 흔한 일이 아니다. 자유방임이 지배할 것 같은 미국이란 나라에서
상류층 자녀들이 사실 얼마나 엄격하게 교육받는지를 엿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를 준다. 세인트 베네딕트 고교의 풍경은 미셸 파이퍼가 주연한
'위험한 아이들' 같은 영화 속 암울한 학교 모습과 가파른 대조를
이룬다.
'엠퍼러스 클럽'은 건강한 보수주의자의 미덕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몸에 꼭 붙는 맞춤 양복을 입은 듯한 케빈 클라인은
확신에 가득찬 좋은 연기로, 융통성 없고 시류에 떨어진 듯 손해보며
살아가도 원칙을 고수하는 헌더트의 진심을 울림 깊게 전달한다. 언제나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 '믿음을 전제로 한 자기 통제'를 교육의
핵심으로 삼는 헌더트의 인간적 매력은 이 영화 매력에 그대로 겹친다.
헌더트처럼 살기가 쉽지 않아도, 혹은 헌더트처럼 살고 싶진 않더라도,
그의 삶에서 아무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삶에서 원칙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믿는 쪽이 아니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