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로 국내에 정착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씨.그는 “강의는 연주보다 어렵고 힘든 도전 ”이라고 했다.<a href=mailto:krchung@chosun.com>/정경렬기자 <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金永旭·56)씨가 서울대 음대 교수가 된다. 한해 1~2주 남짓 공개레슨 등의 강의 ‘시늉’을 내는 초빙교수가 아니다. 풀타임 정교수다.

서울대는 올 봄학기부터 김영욱씨를 정교수로 특별채용하기로 내정, 내달 6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발령을 확정키로 했다. 서울대 음대 관계자는 “김씨는 바이올린 실기를 맡으며, 이르면 3월 20일경 강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경화씨와 함께 한국 바이올린계를 대표해온 김씨의 교수 변신은 그로선 또 다른 도전인 셈이다.

김영욱씨는 서울서 태어나 미국 필라델피아 커티스음대를 나왔다. 1966년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면서 데뷔, 카라얀·오먼디·셸 등 거장 지휘자들과 협연했다. 독일 데트몰트음대 교수를 지냈고, 최근까지 세계적 피아노삼중주단 ‘보자르 트리오’의 리더로 활약했다. 뉴욕에서 19일 서울에 온 김영욱씨를 21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만났다. 김씨는 “최종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터뷰는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완전히 귀국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연주하느라 뉴욕과 파리의 집을 오가며 정신없이 살았어요. 이제는 고국에 정착해서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습니다. 고국의 음악도들을 어떻게 하면 옳은 방향으로 제대로 지도할 수 있을까, 새 고민이 시작된 겁니다. 강의는 연주보다 더 어렵습니다. 두렵지만 제겐 새로운 챌린지(도전)예요.”

-바이올리니스트 이차크 펄만도 최근 줄리아드음대 교수를 맡은 데 이어 지휘자로 변신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는 50대가 되면 연습과 연주가 지긋지긋해지는 겁니까?

“솔직히 연주자의 인생은 터프해요. 거칠죠. 1년에 80회 연주한다고 할 때, 그 중에는 하기 싫지만 오케스트라가 요구하니까 해야하는 곡도 있을테고…. 잘 아시잖아요. 아이작 스턴처럼 평생을 연주한 이가 있는가 하면, 59살이 되면서 ‘연주하기 싫다’며 딱 그만둔 하이페츠 같은 바이올리니스트도 있잖습니까. 그렇다고 제가 연주자이기를 포기하는 건 아닙니다. 바흐의 음악 등 어려서부터 해보고 싶었지만 제대로 하지 못한 곡들을 탐구하면서 제 자신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시간도 함께 갖고 싶습니다.”

-한국 음악도들의 수준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굉장히 재능있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가 첫 골(goal·목표)인 것 같아요. 사실은 ‘어떤 음악가가 될까’ ‘음악을 정말 내가 원하나’ 이게 목표가 돼야 할 텐데 말입니다. 저는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선생이기보다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이고 싶습니다.”

김씨는 서울에 올 때면 운니동에 있는 운현궁 별채 ‘영노당(永老堂)’에서 머물곤 했다. 이 고옥(古屋)은 현재 수리중이어서 김씨는 3월중순경 다시 입주할 때까지 호텔서 지내기로 했다. 이승만대통령 주치의를 지낸 아버지(김승현)가 사들인 이 한옥에서 김씨는 어머니(이현경)의 사랑을 담뿍 받으며 컸다. 김&장 법률사무소의 김영무 대표 변호사가 친형.

-운니동 자택으로 들어가시는 겁니까.

“어머니가 계시던 운니동 집에 오면 너무 편해요. 집과 어머니는 하나입니다. 가구 하나, 나무 하나…. 다 어머니죠. 한살 무렵 영노당에 들어가 중학교 1학년때 미국 유학에 올랐으니 제겐 어머니 품같은 곳입니다. 한국에 완전히 정착하고 싶은 마음도 어머니가 주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