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에서 ‘운동권’이란 정의는 상대적으로 모호하나 진보적이고 독립적인 경향의 예술운동이 권력과 부딪치면서 감옥에 갇히는 수난은 많았다. 근년 들어서는 반대로 특정 정치권과 밀접한 지지세력으로 변모, 주변에서 중심으로 급격히 중심을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문화에 관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문화관광부 장관 후보로 학생운동이나 문화운동 경험을 갖고 있는 문화예술계의 진보적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현재 문화관광부 장관 물망에 오르고 있는 인물들은 유홍준(兪弘濬·54) 명지대 교수, 강내희(姜來熙·52) 문화개혁시민연대 집행위원장(중앙대 교수)과 영화감독 이창동(李滄東·49)씨 등이다. 베스트 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로 유명한 유씨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됐었으며 현재 공모 절차가 진행 중인 국립중앙박물관장에도 지원서를 제출했다.
강씨는 지난 1999년 국가와 시장, 문화제국주의 세력에 대한 비판을 통해 ‘문화 개혁’을 이룩하겠다며 출범한 문화개혁시민연대를 이끌어 온 인물. 최근 한 토론회에서 “새 정부에서는 예총(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같은 단체들은 물러서고, 민예총(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같은 세력이 대거 전진배치돼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화 ‘초록물고기’ ‘오아시스’의 감독인 이씨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盧武鉉) 후보를 적극 지지하는 활동을 벌였다.
한편 노무현 당선자 주위에도 상당수의 진보적 문화예술인들이 포진해 있다. 문화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원용진 서강대 교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사회문화여성분과 전문위원으로 참여했으며 언론관련 보고서 작성을 책임지고 있다. 또 문화개혁시민연대 문화개혁감시센터 소장인 심광현(沈光鉉·47)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역시 노무현 당선자의 자문 그룹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 쪽에서 ‘운동권’에 어울리는 인사는 영화창작집단인 장산곶매의 멤버들이다. 장산곶매는 노동운동을 다룬 ‘파업전야’(전국 순회상영 때 공권력은 헬기까지 동원해 저지),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룬 ‘오 꿈의 나라’, 교육현실을 비판한 ‘닫힌 교문을 열며’를 만들며 맹렬히 활동했다. ‘공동경비구역 JSA’ 등 10여편을 제작한 명필름 이사 이은(42)씨, ‘접속’ ‘텔미썸딩’을 감독한 장윤현(36)씨,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을 감독한 장동홍씨가 당시 주요 멤버였다.
영화감독 홍기선씨는 서울영상집단 소속으로 86년 농촌 소값 파동을 다룬 영화 ‘파랑새’ 제작 때 영화법 위반으로 구속된 뒤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를 연출했고, 장기수 문제를 다룬 ‘선택’을 연출 중이다. 영화평론가 이효인씨도 서울영상집단 소속으로 ‘파랑새’ 때문에 구속됐다. 또 상계동 철거민 다큐인 ‘상계동 올림픽’을 만든 김동원씨, 91년 학생운동을 다룬 ‘오 어머니 당신의 아들’을 연출한 이상인씨가 있다.
문인 중 '운동권' 계열은 진보적 문인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를 중심으로 문학 안팎의 참여가 활발하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원장에 임명된 현기영(62)씨를 우선 꼽는다. 그는 한국문학사에서 제주도 '4·3사건'을 처음으로 다룬 소설 '순이 삼촌'을 비롯, '변방에 우짖는 새' '마지막 테우리' '바람 타는 섬' 등 제주도의 역사적 고난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썼다.
30~40대 젊은층 중 투옥 경력의 인사는 문예계간 '황해문화' 주간인 김명인(45)씨가 있다. 전두환 정권이 서울대 운동권 학생들을 반공법으로 잡아넣었던 '무림' 사건으로 80~83년 약 2년간 투옥됐다. 동덕여대 교수 김사인(47)씨도 사노맹 기관지였던 노동해방문학의 사장이자 편집인으로 수배생활을 오래했다. 시인 김정환(49)씨는 노동자문화예술 운동연합 의장을 지냈으며, 70년대 유신반대, 80년대 노동운동으로 강제징집과 투옥경력이 있다.
미술계에선 화가 임옥상(53)씨가 먼저 떠오른다. 그는 80년대를 풍미한 민중미술의 대표주자. ‘보리밭’ ‘아프리카 현대사’ 연작은 평단의 격찬을 받았고 인기도 누리고 있다. 촛불시위에도 적극 나섰고, 대선 땐 권영길 후보를 지지했다. 또 민족미술협의회 이사인 김정헌(57)씨는 문화개혁시민연대 상임 집행위원장도 맡고 있으며 역시 민중미술 출신이다. 화가로 민예총 부이사장인 김용태씨는 지난해 문화예술단체들의 ‘대선후보 문화분야 공약평가’를 주도했다. 북한과의 미술 교류에도 앞장서왔다.
출판계에선 출판사 ‘휴머니스트’ 사장 김학원씨를 빼놓을 수 없다. ‘80년대 운동권으로 90년대 출판계에 진입한 인사들’의 전형이다. 그는 83년 집시법으로 1년 반의 실형을 살았다. 투쟁과 구속을 반복하다 91년 출판계에 입문했다. 그는 “노무현 당선 이후 과거 같이 운동하던 사람들이 ‘같이 정치하자’는 전화를 많이 한다”면서, “걱정된다”고 했다.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사회평론 사장 윤철호(41)씨도 89년 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 사건으로 구속됐다. 도서출판 일빛 사장인 이성우(46)씨도 당시 같이 구속됐다. ‘컴퓨터 무작정 따라하기’ 같은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로 히트한 도서출판 길벗의 이종원 사장은 85년 민추위 사건과 90년 사노맹 사건의 군대 내 조직인 혁노맹 결성혐의 등으로 두 차례 구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