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미국 신문들은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구애(求愛) 광고 유치에
나선다. 뉴욕타임스 같은 권위지도 예외가 아니어서 '신문으로 사랑을
고백하라'고 판촉한다. 광고료는 넉 줄짜리 기본이 50달러쯤이다. 97년
밸런타인데이, 워싱턴포스트엔 '로미오와 줄리엣'의 연시(戀詩)를
인용한 사랑의 메시지가 실렸다. 발신자 'M'은 모니카 르윈스키의
이니셜, 수신자 '핸섬'은 클린턴의 별명이었다.

그런 치정(癡情) 아니라도 서구에서 밸런타인데이는 대표적인 사랑의
축일(祝日)이다. 미국인의 80%가 이날 선물을 한다는 통계가 있다. 가장
인기있는 선물은 카드로, 10억장이 팔려나간다. 장미가 1억1000만 송이,
달콤한 사랑을 상징하는 초콜릿도 11억달러어치씩 팔린다.

밸런타인데이의 기원은 분명치 않다. 3세기에 순교한 성 밸런타인을
기리는 축일과, 로마 이교도의 루페르칼리아 축제 설이 엇갈린다. 성
밸런타인과 구애관습과는 연관이 없다. 동면에서 깨어난 새들이
짝짓는다는 2월 14일이 성인 축일과 맞아떨어져 사랑의 날이 됐다는
것쯤이다. 영국에서 500여년 전 밸런타인 연애편지가 발견되는 걸로
미루어 꽤 오래된 습속인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90년대 한국에 상륙한 밸런타인데이가 황당한 것만은 아닌
듯싶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남녀 가리지 않고 애정을 표시하는 날이며,
남자쪽이 더 많이 구애한다. 가족·친구·스승에게도 카드를 보내니,
보다 보편적인 사랑의 날이라 할 수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초등학생들까지 번져있고 여자만 애정을 전하는 날이란다. 사내들이
거꾸로 사탕을 보낸다는 3월 '화이트데이'는 일본 제과업계의 판촉
상혼이 여과 없이 수입된 경우다. 몇 술 더 떠 매월 14일을 갖가지
'데이'로 정해 연중 선물을 주고받는 건 풋내나는 기현상이다.

초콜릿 바람도 별나다. 몸에 발라먹는 초콜릿, 초콜릿 속옷에 초콜릿
립스틱, 초콜릿 콘돔까지 등장했다. 초콜릿에 곁들이는 종이학
1000마리를 접어 2만원에 파는 곳까지 인터넷에 생겨났다. 오늘은
밸런타인데이, 내일은 정월 대보름이다. 딱딱한 부럼을 깨먹는 풍습에는
치아를 튼튼히 하려는 지혜가 담겨 있다. 충치를 부르기 십상인 초콜릿
열풍과는 비교할 수 없이 건강하다.

(吳太鎭 논설위원 tjo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