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고 길쭉한 가죽가방을 어깨에 둘러멘 남자들이 하나 둘 스튜디오로
들어섰다. 한 사람은 자동소총이라도 들었을 것 같은 하드케이스다. 다들
어깨에 닿는 머리카락을 철렁이거나 질끈 동여맸다. 각자 가방에서
날렵한 일렉트릭 기타를 꺼내 들더니 앰프를 켜고 잭을 꽂았다. 작렬하는
굉음, 그 날카로운 달콤함이란.
신대철(37)·김태원(38)·김도균(39) '한국의 3대 록 기타리스트'가
뭉쳤다. 각각 시나위(신대철)·부활(김태원)·백두산(김도균)의 리더인
세 명은 프로젝트 그룹 'D.O.A'를 결성, 일렉트릭 기타를 전면에
내세운 음반 '데드 오어 얼라이브(Dead Or Alive)'를 이달 말쯤
내놓는다. 들국화와 송골매가 '소프트 록'으로 사랑받던 1980년대,
한국의 헤비 메탈을 개척한 이들 세 기타리스트의 합작 소식은 록 팬들을
설레게 한다.
"2년 전쯤부터 기획했습니다. 처음엔 세 그룹이 옴니버스 앨범을 내볼까
했는데, 리더들만 모여 뭔가 만들어보기로 한 것이죠."(김태원)
그룹명 'D.O.A'는 미국 서부시대 현상범 포스터 '지명수배: 사살 또는
생포(Wanted:Dead Or Alive)'에서도 힌트를 얻었고, 미국 록밴드 밴
헤일런의 명반 '밴 헤일런Ⅱ'에 실린 곡의 이름이기도 하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해보겠다는 거죠. 어중간한 상태는 거부하고요. 우리가
90년대에 죽어있었다면 이젠 살아있다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김도균)
"요즘 록이 새로 '뜬다고' 하지만, 그런 얼터너티브나 모던록 유행을
의식한 건 아닙니다. 록은 일렉트릭 기타에서 비롯된 '기타
음악'입니다. 요즘 록은 기타보다 보컬과 가사에 신경쓰는 '예쁜'
록이잖아요. 한국에도 이런 록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신대철)
지금 인기있는 록밴드 자우림이나 체리필터 모두 여성보컬을 앞장세웠고,
롤러코스터는 재즈를 가미한 록밴드다. 윤도현밴드도 록 기타리스트
유병렬이 나간 뒤 재즈기타를 치던 허준이 들어오면서 색깔이 사뭇
바뀌었다. 하기야 H.O.T 출신 문희준이 로커를 자처하는 시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업은 록 팬들은 물론, 록을 하는 후배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기타리스트가 설 무대가 점점 좁아지고 있잖아요.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장남이기도 한 신대철은 83년 시나위를 만들어,
올해 결성 20주년을 맞았다. 김태원과 김도균은 85년에 각각 부활과
백두산을 결성했다. 세 그룹 모두 86년에 첫 앨범을 내놓았다. 이때가
한국 메탈의 시작이자 르네상스였다. 대중가요 사랑타령에 식상한
젊은이들은 기타의 금속성을 극대화한 엄청난 속주(速奏) 기타에
탐닉했다. 김도균·김태원은 중학교때부터, 신대철은 초등 4학년때부터
기타를 쳤다. 신대철은 "기타들이 집에 굴러다녔다"고 말했다.
이들의 음반은 역시 기타 위주로 듣는 것이 '공식 감상법'이다. '어둠
속에서'(백두산),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시나위),
'희야'(부활) 등 한국 록의 명곡을 다시 연주했고, 신곡도 4곡
포함됐다. 신대철 신곡 '뛰는 개가 행복하다'는 일렉트릭 기타의
'교향곡'이랄 만큼 현란한 곡. 공동작곡 '데드 오어 얼라이브'는
장장 12분 14초짜리 블루스 록으로, '트리플 기타'의 육중한 사운드와
세 기타의 특색이 잘 드러난다.
"사람들이 저더러 '가수'라고 할 만큼 우리 대중음악에 가수 비중이
너무 높습니다." 신대철은 "레드 제플린이나 지미 헨드릭스가 '록의
클래식'이 된 것처럼, 우리도 '한국 록의 고전'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들의 결합은 빈약한 한국 록에 연결된 고출력 앰프다. 한국
록이여, 잭을 꽂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