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놓치지 않는걸 보면 역시 한국인의
손재주는 세계적인 모양이다. 이는 영상분야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컴퓨터그래픽을 만드는 '솜씨'만큼은 우리나라도 세계 수준에 크게
처지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방향이 올바르냐에는 의문이 따른다. 컴퓨터그래픽을 첨단이나
최신유행을 표상하는 도구로만 여기는 이들이 적잖다. 할리우드 영화
'매트릭스'가 우리를 놀라게 하면 곧 이어 "우리도 그 정도는 따라
잡을 수 있어"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디지털 영상의 진정 위대한
힘은 굉장한 특수효과를 현란하게 보여주는데 있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디지털 영상의 대가들은 거기에 '인간적인 숨결'을 불어 넣는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20년만에 'E.T.'를 디지털로 다시 작업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달아나는 어린이들을 향하던 정부요원들의 총을 무전기로
바꾸었을 뿐, 영화를 화려하게 만들려고 디지털기술을 남발하지 않았다.
'백 투 더 퓨처'를 만든 로버트 저멕키스는 18년만에 DVD를 만들면서
등장인물을 시계탑에 묶었던 피아노줄을 일부러 화면에서 지우지 않았다.
영화가 당시 보여줬던 '약간 촌스런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드라마의 감동과 캐릭터가
디지털영상으로 좀 더 따뜻하게 그려지는 것이지, 기술력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컴퓨터 에니메이션 '슈렉'이 개봉하자 많은 이들이 그 기술에
감탄했다. 그러나 내가 놀란 것은 첨단영상의 능력보다는 너무나 생생한
창조적 캐릭터와 스토리의 재해석이었다. 이젠 우리도 디지털 영상의
현란함에 취하기보다는, 그것이 그려낼 수 있는 인간미에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이시명·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