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4번째 우승을 노리는 이창호 九단(왼쪽)과 국제 대회 사상 최연소 결승 진출을 노리는 원성진 四단 간의 열전 모습.


'만년 소년' 이창호(28)가 어느 새 '최고령자'가 됐다. 11일 펼쳐진
제7회 LG배 세계기왕전 준결승 이야기다. 그와 결승 진출을 함께 다툰
조한승(20) 五단, 이세돌(20) 三단, 원성진(18) 四단 등이 모두 이창호의
새카만(?) 후배들. 평균 연령 21. 5세는 종전 국제 대회 최연소 4강 기록
27세(1회 LG배·4회 춘란배)를 훌쩍 뛰어넘은 신기록이다.

11세 때 입단해 최연소 타이틀 획득(13세), 최연소 세계대회
우승(17세)을 거치는 동안, 그리고 그 후에도 부동의 1인자로 독주하는
동안 이창호는 영원한 소년의 이미지였다. 10대 시절엔 상대방 아저씨 뻘
선배 기사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던 그다. 바둑이 자신의 승리로
끝난 뒤엔 무슨 큰 죄나 지은 듯 몸둘 바를 몰라하곤 했던 이창호. 그런
그가 이번 준결승 전야 숯불구이 집 식사 때 감동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고기를 불판에 얹는 역할을 자청하더니, 후배 기사들 앞으로 다 구은
고기를 밀어다 놓기도 했다.

이번 LG배가 완벽한 '청소년 잔치'마당을 이룬 것은 조훈현(50)
유창혁(37) 등의 노장과 중견들이 중도 탈락했기 때문이다. 이들
배테랑들은 언제건 다시 정상권으로 복귀할 힘이 있다. 하지만 바둑계
중심 축의 연소화 속도는 갈 수록 빨라져 이제는 4강 평균 연령이 10대로
내려간 들 큰 이변은 아닌 세상이 됐다.

송(宋)나라 때의 석학 주자(朱子)도 일찌기 '소년은 쉽게 늙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少年易老 難成)'고 갈파했다. 어린이를 장정으로
키워내고, 칠흑같던 청년의 머리에 흰 서리를 뿌리는 것이 세월의
힘이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어린 소년 시절의 이미지로만 각인돼온
이창호(28)의 노화(?)는 새삼 신기한 광경이었다. 꼭 10년 아래의
원성진과 마주 앉은 이창호는 그 옛날 선배 '아저씨'들의 심정을
헤아려보는 기분이었을까. 또 원성진 이세돌 조한승들은 다시 10년 뒤,
후배들의 겁없는 도전을 받는 자리에서 문득 이 날을 떠올리게 될까.